벌써 봄이 무르익어 여름의 문턱이다. 낮이 길어지고 활동이 많아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쌓이고 있다. 오래전에 잊은 줄 알았던 소리가 나를 부른다. 새벽잠에도 분명 새소리였다. 봄내 우는 뻐꾸기소리가 아니라 요즘은 듣지 못하는 소리였다. 쪽박 바꿔주!! 쪽박 바꿔주!! 새는 맑은 소리로 울었다.
심술덩어리 시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며느리를 내쫓으려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딸에게는 커다란 바가지를 주고 밥을 짓게 해서 넉넉했고 며느리에게는 조그만 쪽박을 주고 밥을 지으라고 했으니 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딸이 똑같이 한 바가지씩 밥을 해도 딸은 온 가족이 먹고도 남을 만큼 되는데 며느리는 밥이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고 흉을 보고 다녔다. 그러다 며느리가 밥을 훔쳐 먹고 일부러 식구들을 배 곯린다고 갖은 구박을 하며 며느리를 괴롭혔다. 마침내는 쌀을 빼돌리는 못된 며느리로 몰아내 쫓고 말았다. 가엾은 며느리는 길에서 울다 기진해서 죽고 말았다. 그 혼이 새가 되어 쪽박 바꿔달라며 울었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죽어서도 쪽박을 바꿔달라고 했을지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예전에는 여자기 시집을 가면 의례히 시가의 풍속을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시집 식구에게는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윗사람으로 공대를 하며 시중을 들며 보살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늘 긴장 속에서 주어지는 일에 충실해야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남편이라도 자상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야말로 소 닭 보듯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내를 고향에 두고 서울이나 떨어진 지역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경우 층층시하에서 겪는 외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려니 하고 살았다. 마치 예전에 인기 드라마 여로의 주인공 같은 삶을 저항 없이 살아냈다. 그러나 이슬비에 옷 젖듯이 세상은 변하고 그런 여인들의 한스런 삶도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며칠만 지나도 젓가락 갈만한 반찬도 없고 떨어진 소모품을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급하게 마트에 가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함께 장을 보러 다닌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만 칭얼대기라도 하면 엄마보다 아빠 손이 먼저 간다. 그리고는 먹는 시중에 얼굴 닦아주고 온갖 치레를 참 잘도 한다. 물고 빨고 우리가 자랄 때 엄마들이 하던 보살핌을 이제는 아빠들이 척척 알아서 한다. 그렇게 예쁜 아이들을 보면서도 젊은 남자들이 결혼을 기피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유인즉 남자들의 노력에 비해 여자들이 바라는 것은 많은 반면 상대를 존중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 물론 여자들이 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이미 모성은 고갈되고 있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사랑으로 감내하던 일들이 더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걱정이 많아진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방향이 잘못 되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여성들이 쪽박새처럼 살아서도 안될 일이지만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바뀌어서도 좋을 리가 만무하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시대에 따라 바뀌겠지만 서로가 그립고 고마운 언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