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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 미술경향, 앵포르멜

 

연일 메르스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머나먼 중동에서 날아온 질병의 출현 앞에 사람들은 공포로 휩싸였고, 정부의 늑장 대처와 불충분한 정보공개를 비난하면서 SNS를 통하여 어느 병원에서 확진환자가 나왔고 어느 병원에서 의심환자가 나왔는지에 대한 정보를, 그것이 사실인지도 잘 모르는 채 쉴새없이 나누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이고 특정한 쟁점에 주목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한 때 우리나라 미술계를 휩쓸다가 곧 사라졌던 한 경향을 떠올리게 되었다. 앵포르멜(informel)이라는 회화운동으로서, 처음에는 유럽에서 생겨났고 1950년대 말 우리나라 화단이 이를 적극 수용했다. 앵포르멜은 ‘형태가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두 차례에 걸친 끔찍한 전쟁을 겪은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서 생겨났다.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인간의 이성에 중심을 두는 가치관이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파국을 몰고 왔다는 성찰을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인간의 감성에 가 닿는 새로운 지식, 문학, 미술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중 앵포르멜이라는 미술운동은 형이상학, 기하학을 중시했던 기존의 ‘차가운 추상’에 대응해 ‘뜨거운 추상’을 탄생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차가운 추상’과 비교했을 때 형식적으로도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유화를 두텁게 발라 거친 표면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 재료를 가공 없이 붙인다든지, 혹은 조직세포나 세균, 장기들을 연상시키는, 어떻게 보면 징그러운 도형들을 반복적으로 그려내는 식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화단이 당시 앵포르멜에 주목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서양식 미술교육을 이제 마친 젊은 작가들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을 탄생시키고자 고무되어 있었으며, 식민지하의 관전 미술 제도와 기득권 미술가에 대한 반항심을 극도로 키우고 있었다. 지금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는 박서보, 하인두, 윤명로, 정상화, 김종학 그 외 수많은 작가들이 모두 한때 앵포르멜 기법을 구사했다.

사실 이들 대가들은 오늘날에는 전혀 새로운 양식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서보는 두말할 필요 없는 단색화 회화의 거장이며, 김창열은 물방울 작가이다. 윤명로는 단색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균열과 진동의 느낌을 더 많이 살린다. 정상화 역시 단색화 화가로 분류될 수 있으며 하인두의 화풍도 그 시절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극도로 절제되고 단순한 화풍을 구사하고 있는 이들 모두 당시에는 거친 질감으로 인간의 고통과 질곡을 그려낸 작가였다. 그러나 50년대 말 시작된 우리나라의 앵포르멜 운동은 불과 2~3년만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서양에서 유입된 특정한 경향이 이토록 빨리 화단을 휩쓸 수 있었으며, 이후 급격히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한 답을 이 작은 지면에 싣는 것은 불가하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체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마치지 못한 채 급격히 수용됐던 경향은 애초에 오래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당시 앵포르멜을 수용했던 작가들은 거장으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자신의 체질과 내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성찰을 해야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것으로의 회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는 화단에서 앵포르멜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이 의미가 없었다거나 우리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 작가들은 거장으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한때 앵포르멜이라는 조류를 만나 나름의 양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의 상당수가 최종적으로는 보다 절제되고 관념적인 화풍을 선택했다 해도 말이다. 앵포르멜이라는 강력한 운동으로 말미암아 기성 화단으로부터 자기를 단절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선을 그었으며, 이때 얻은 추상화의 기법들은 이후 이들이 독창적인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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