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그윽한 품안으로 들어서는 일은 안긴다기보다는 끌려들어간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지난 밤 한 차례 쏟아진 소나기의 영향 때문일까, 새소리 머금은 숲은 더더욱 싱그러웠다. 작은 알갱이, 자갈이 섞인 황토빛 화산송이가 발밑으로 밟힐 때마다 간질거리는 생명의 힘 울컥울컥 스며드는 곳. 해질녘 다 되어 들어선 이곳, 비자림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신비스런 비밀의 화원.
1천년을 끌어안고 버텨왔을 숱한 이름자. 풀, 나무, 꽃, 생명, 또 생명들. 그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숲은 위대했다. 시차를 두고 울려주는 새소리의 추임새에 아득아득 꿈을 꾸는 야생풀들의 귓불마다 흡족함의 미소가 주렁주렁 피어나는 이곳이야말로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세계가 아닐까. 억지로 밀어내지도 않고 강제로 끌어내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럽게 햇살 향해 자기 얼굴 더 환하게 웃기만 하면 되는 은근한 인내심. 하늘이 주는 빗물의 여유를 욕심 부리지 않고 나눠가질 줄 아는 본능적인 배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천년을 하루같이 묵묵히 걸어갈 줄 아는 그 느림의 미학만 배울 줄 안다면 무얼 더 바랄게 있을까.
초록의 숲 걷다보니 문득 지난 밤 들렀던 사람의 숲이 떠올랐다. 관광지 최고의 맛 집이라 검색된 음식점. 저녁 여덟시쯤의 맛 집 식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식당의 안팎은 손님들로 와글거리고 출입구에서부터 줄지어선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 또한 흥분에 들떠 왁자지껄했다. 그 와중에 새치기를 하는 몇몇 사람들의 추태까지. 한 잔 거나하게 취하여 털어놓는 세상사는 이야기로 범벅이 된 그곳은 그야말로 와글거리는 사람의 숲이었다.
쉴 사이 없이 오가는 음식 주문하는 소리가 마치 휘파람새의 그것과도 같이 들릴 때쯤 차지한 테이블. 바삭하게 구워진 두툼한 고기 몇 점을 입안에 넣고서야 우리 테이블에서 서빙을 도와주는 종업원의 얼굴을 쳐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지칠 대로 지쳐 서 있기조차 힘들다는 그 표정. 그는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고 했다. 먹는 행위 하나에 푹 빠져 행복에 겨워있는 사람들의 그 공간이 그들에게는 전쟁터, 바로 일터였던 것이다. 물론 행복한 일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보여 지는 그 표정만으로는 분명 전쟁터와도 같은 일터로 보였다. 그냥 마주앉아 잠시 쉬며 식사라도 함께 하자 손 내밀고 싶을 만큼 말이다.
멀리서 보는 사람의 숲. 그 안엔 분명 갖가지 사람들이 뒤엉켜 있을 것이다. 삶에 지쳐 찾아든 이, 그날 하루가 한없이 행복한 이, 장사가 잘 되어 흥에 겨운 사장, 하루살이로 그날을 버텨내는 이, 더하여 먹고 먹히는 상술의 관계까지. 저만치 떨어진 숲 밖에서 사람의 숲을 바라볼 때는 얽히고 설켜 돌아가는 사람 사는 이치를 놓칠 때가 있다. 마치 한 눈에 반해 한나절을 헤어날 줄 모르고 거닐었던 한없이 평화로운 비자림, 그 속 또한 가만히 들여다보면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뒤엉켜 돌아가고 있다는 그 치열한 현실을 내가 간과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사람의 숲이나 자연의 숲이나 가끔은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저 모르는 척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