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절박한 순간에 부서지고 조각난 형태를 그린 피카소가 있었던 반면, 생의 기쁨과 활력을 그렸던 마티스도 있다. 두 작가 모두 1900년대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던 혁신적인 인물들이었고, 이들은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대표적인 입체파 작가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한 때의 작품에서 야수파의 스타일을 구현한 적이 있었고, 야수파의 대표 작가 앙리 마티스 역시 입체파를 골똘히 연구했던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피카소는 세계대전의 시기에 ‘게르니카’를 제작했던 반면 비슷한 시기 마티스는 ‘삶의 기쁨’과 ‘춤’을 제작하였다.
마티스의 작품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삶의 기쁨이 충만하다. 우울한 기분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밝은 색채와 리듬감을 지녔다. 마티스의 기교 넘치고 기운생동한 선들, 밝은 색채를 보고 있노라면 삶의 무게를 잊고 기쁨에 차있는 영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장식적으로 보인다며 이를 단점으로 꼽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주의 깊게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작품이 주는 기쁨이 혜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춤’이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강강술래’와 비슷한, 프로방스 지역에 전해지는 민속춤을 그린 작품이다. 여러 명의 인물들이 손을 맞잡고 둥글게 돌고 있는데, 무용수들은 중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맞잡은 손과 팔은 거의 작품 테두리에 닿을 정도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밝게 빛나는 배경, 역동적인 인물들로 꽉 차있는 구도로 인해 작품은 캔버스 밖으로 벗어난 더 큰 세계와 이상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기쁘고 환희에 찬 몸짓이야말로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라고 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후 작품들에서는 보다 마티스다운 요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색채가 구도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동양 수공예품들의 장식적인 무늬들을 작품의 전면에 차용하기도 하였다. ‘붉은 색의 조화’나 ‘커다란 붉은 실내’를 살펴보면 원근감은 전혀 나타나있지 않고, 배경은 장식적인 무늬로 가득 차 있으며, 사물들은 검정색 굵은 윤곽선으로 그려져 있어 배경의 또 다른 장식 무늬인 것 같다. 작품은 이치와 이성을 초월하는 강렬한 그 무엇을 화폭에 채우고 있다.
사실 마티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기쁨 충만한 이미지를 그린 작가라는 사실이 아이러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유년시절에는 아버지의 반대로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 못할 뻔 했고,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어서도 건강상의 이유로 젊은 시절 그림을 포기할 고민까지 했었다. 세계대전 때에는 살고 있던 집이 폭격을 맞아 먼지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삶의 기쁨’은 이 무렵 제작되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난 이후에는 ‘극도의 건강 악화’가 찾아왔다. 1940년 마티스는 암 선고를 받았고, 십이지장 수술을 받았으며, 손에는 관절염이 와서 붓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무렵 프랑스에 주둔하며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아내와 딸마저도 독일 경찰에 체포되는 수난을 맞게 된다.
붓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화가로서의 생명이 종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청력을 읽고서도 그전보다 더 위대한 곡을 썼던 베토벤의 삶을 마티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붓 대신 가위를 들었고 색종이를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를 잘라 만들었다 해서 이 시기의 작품을 ‘컷아웃 작품(Cut-out Works)’이라고 부른다. 다시 한 번 활력을 찾았고 더욱 강렬하고 밝은 색채를 구사함으로써 작가로서 한 단계 더 발돋움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붓으로 그린 작품들보다 이 시기의 작품을 더 많이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색종이 작품에서는 일종의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이나 비운의 인물을 그린 작품에서도 심지어 기쁨이 느껴진다. 자유함, 그리고 삶의 혜안에서 비롯된 기쁨, 그것은 마티스의 작품들이 전하고 있는 단순하지만 명석한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