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계단에서
/서순석
살아 욕된 이름들이 투사보다 당당하다.
매국의 후예들은 박물관 밖에서
손가락 마디 늘이며 땅 싸움을 하는데
역사란 산 자(者) 위해 포장된 과거
사적(史籍)은 압축된 시보다 어렵구나.
바람이 그리운 금관, 풍악만을 부르고
등진 해에 몸보다 더 길어진 그림자가
양지를 내몰고 음영을 즐길 때
음모는 구석에 모여 반란을 꿈꾼다.
마지막 왕족도 사라진 이 땅에
양심으로 남은 신명 덜 깨어 있어도
백성아, 혼불로 남을 미친 춤을 추어라.
매국의 후예들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의분에 떨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친일을 한 대가로 축적한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 벌어지는 소송들에서 때로는 승소하고 더러는 패소하는 상황을 가슴치며 한탄한다. 사회 지도층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섬기지 않으면서 개인의 치부와 영달을 위해 권력을 남용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면 해야 하고 가족과 생업, 고향을 등지고 오로지 나라 되찾는 일에만 매진했던 애국지사들과 그 후손들이 마땅히 존중받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식민지 사관에서 벗어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시인의 결의가 느껴진다.
/권월자 수필가·수원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