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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그 많던 시장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

 

수원에 사는 나는 퇴근길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팔달문 근처 전통시장에 가끔 들른다. 물론 명절을 앞두곤 예외 없이 찾지만 평일에도 가곤 한다. 근처에 대 여섯 개의 시장들이 몰려 있어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시간 보내기가 좋아서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른데 있다. 대형마트처럼 정갈하지는 않지만 복작이는 사람들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옛 향수도 느낄 수 있어 서다. 때문에 시장에 가면 덩달아 기분도 좋아 진다.

출출함을 느낄 때는 모처럼 먹거리 좌판에서 주전부리도 한다. 목이 칼칼할 때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기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시장 갈 때면 버스를 타고 간다. 주차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서도 그렇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레 시장 구경을 하고 구입한 장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기분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어릴 땐 시장을 더욱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시던 어머니는 공부 한답시고 서울로 유학(?)간 내가 모처럼 내려오면 오산 읍내 장날을 기억 하셨다 어김없이 데리고 가셨다. 날짜가 5일과 8일 이었던 것이 기억날 정도다. 어머닌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선 텃밭에서 나지 않는 생필품을 구입하시고 나를 위해선 신발 속옷 등을 사주셨다. 돌아오는 길엔 어김없이 입을 즐겁게 해주셨다. 버스에서 느끼는 포만감은 행복 자체였다.

덕분에 옛날 추억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구성진 가락과 만담을 곁들인 약장수들의 너스레는 지금도 생생하다. ‘애들은 가’를 시작으로 ‘잡숴봐’ ‘먹어봐’를 연신 외치는 쉰 목소리의 약장수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의 웃음소리도 기억난다.

뿐만 아니라 장터에는 신기 한 것도 있었다. 고무신이나 장화를 때우고 구멍 난 양은 냄비나 그릇을 땜질하는가 하면 쪼개진 사기그릇을 붙이는 좌판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어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고무신의 경우 찢어진 부위를 깁고 다시 고무풀을 바른 뒤 생고무를 덧붙여서 불에 달군 기계 위에 압착시켜 때우는 방식이었는데 정신없이 보던 기억도 새롭다.

지금도 평소에는 조용하던 농촌 마을이 장날만 되면 북적인다. 물론 몇몇 남지 않은 5일장의 경우긴 하지만 옛날에는 지금과 비교 불가다. 전국의 여느 장터가 그러 했듯이 길목 부터 곡식자루나 닭, 달걀, 채소 등등 평소에 애써 기르고 생산한 것들로 가득 했고 새벽에 이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나온 아낙들은 흥정하느라 정신이 없다. 거기에 소나 마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도 한데 어우러져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다.

이러한 5일장은 주변의 ‘뉴스타운’ 역할도 톡톡히 했다. 지금에야 인터넷, SNS 또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시시각각 알 수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니었던 과거엔 5일장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이요, 세상물정을 알고,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보를 교환하는 마당이요 여론을 형성하는 터전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5일장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전통시장으로 옮겨갔다. 기자 초년병시절 시장물가조사를 시키는 선배의 지시를 동료들은 싫어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신났다.

외국 생활 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경특파원 시절 외로움도 달래고 가족이 보고 싶으면 근처 전통시장을 자주 찾았다. 한국과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지만 사람냄새 삶의 치열함 훈훈한 정감등은 마찬가지여서 향수를 달래는 장소로서는 그만 이어서 그랬다. 특히 새벽공기를 가르며 숙소 근처 새벽시장엘 가면 언제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사람을 들뜨게 하고, 마음까지 넉넉하게 풀어줘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신기하게도 재래시장의 분위기는 세계 어느 곳을 가나 비슷한가 보다.

지금은 전통시장도 예전과 많이 다르다. 어느 틈 엔가 사양길을 걸으면서 날이 갈수록 사람냄새도, 풋풋한 정감도 예전만 못하다. 재래시장은 단순히 식재료와 생필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전통과 문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접점이다. 그런 재래시장이 요즘 블랙프라이데이니,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니 하는 이벤트에 묻혀 더욱 썰렁하다. 그 많던 시장 사람들과 풍성한 웃음, 모두 어디로 간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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