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생조합은 1908년에 설립됐다"
장유정 서울대 강사는 5-6일 이화여대 교수회관에서 한국고전여성문학회(회장 이혜순)주최로 열리는 동계학술발표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장씨는 '20세기 전반기의 기생과 기생가수에 대한 일고찰'을 주제로 한 발표문에서 1908년 10월27일자 <황성신문>의 '妓生組合成立(기생조합성립)' 제하의 기사 를 근거로 "기록상 처음 나타난 기생조합은 1913년 조직된 광교조합이라는 기존 주장과 달리, 1908년에 이미 기생조합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기생조합이란 국가가 기생을 관리하는 제도인 관기(官妓)가 폐지된 직후인 1910년대를 전후해 생겨난 근대 전환기의 독특한 조직. 기생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비롯해 기생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맡아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1913년 활동을 시작한 광교기생조합을 최초의 기생조합으로 보고 있으나, 장씨는 이보다 5년을 거슬러 올라간 1908년 9월에 관기제도가 사실상 폐기된 직후 '유부기생(有夫妓生)'을 중심으로 기생조합이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한성기생조합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씨는 "'박한영 등 삼십여인이 발기하야 한성내 기생영업을 조합하야 풍속을 개량하기로 목적하고 규칙을 제정하야 경청에 청원하얏다더라(朴漢英 等 三十餘人이 發起하야 漢城內 妓生營業을 組合하야 楓俗을 改良하키로 目的하고 規則을 諸定하야 警廳에 請願하얏다더라)'는 <황성신문> 기사는 박한영 등이 기생조합을 성립하겠다고 경청에 청원한 내용"이라면서 "한성기생조합이 원각사에서 공연을 한다는 1910년 2월22일자 <황성신문>의 광고나 고아원경비를 보조하기 위해 자선연주회를 했다는 기록 등으로 미뤄 이 기생조합이 한성기생조합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1908년의 기사를 가생조합이 허가받지 못했다고 해석한 주장에 대해 "허가받지 못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며 "오히려 '기생조합성립'이라는 기사제목을 참고할 때, 기생조합의 설립이 허가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반론했다.
한편 장씨는 발표문에서 판소리, 잡가 등 통속가요가 대중가요로 변이되는 과정의 중간자 역할을 했던 20세기 전반 기생가수 가운데 대표적 인물인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이은파, 이화자, 김이숙 등의 생애와 대표곡도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