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별곡을 지은 고려 때 문신 안축(安軸)은 설악산을 이렇게 예찬했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하다. 그러나 설악산은 수려하고도 웅장하다.’ 굳이 이런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설악산은 산세가 어우러진 풍경의 완성도면에서 국내 산의 지존(至尊)에 가깝다. 그래서 설악산을 사계절 특히 가을의 황홀한 절대군주라 부른다.
‘한가위부터 내린 눈이 다음해 여름 하지 때에 비로소 녹는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악산엔 감추고 있는 비경이 여럿있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13년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 10경이 있다. 설악산 어느 한 곳 수려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웅장하고 경관이 빼어난 외설악 5곳과 내설악 5곳에 위치한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대승폭포를 비롯 십이선녀탕, 구곡담 계곡, 비선대와 천불동 계곡, 용아장성, 공룡능선, 울산바위, 내설악 만경대 등이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도 서부능선 허리인 대승령 골짜기 중간의 대승폭포와 화채봉 줄기에서 쏟아지는 토왕성폭포 일대는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시청각’ 절승지라 부른다.
설악 3대 폭포 중 하나이기도 한 대승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반열에도 올라 있고, 한국에서 가장 긴 길이도 자랑한다. 폭포 맞은편 언덕의 반석 위에 ‘구천은하(九天銀河)’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楊士彦)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토왕성폭포 풍광도 이에 못지않다. 외설악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 한가운데로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길이 300미터 연폭(連瀑)인데 멀리서 보면 마치 선녀가 흰 명주 천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하다고 해서 설악산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토왕성폭포는 그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됐었다. 탐방로가 없고 접근이 위험해서였다. 이런 설악산의 숨은 보석이 이번 달 말 45년 만에 공개된다고 한다. 반세기만에 베일을 벗는 토왕성폭포, 그 반가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