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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영리한 밀실 미스터리, 세상을 구할까?

살인자 리포트 – 조영준

 

미국 영화사 소니 제작의 한국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겉으로 보기에 상당히 댄디하고 세련된 장르영화처럼 보인다. 그건 순전히 배우들 때문으로 보이는데 정성일, 조여정의 도시적이고 모던한 이미지 덕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영화가 꽤 지적인 게임이 동원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어서이기도 하다. ‘살인자 리포트’는 일종의 밀실 살인극이다. 뭐 그렇다고 밀실 안에서 누가 죽고, 그 살인자가 밀실 안에 같이 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마구 속출해서 도저히 살인자를 추정할 수 없는 식의 전형적인 밀실 수수께끼는 아니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캐릭터 에르퀼 푸아로 경감은 늘 말했다. “밀실 안의 살인 사건은 밀실 안에 같이 있던 사람이 범인이다”라고. 만약 밀실 안에 죽은 사람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살인자는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살인자 리포트’는 밀실 안과 밖을 오가려고 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 ‘살인자 리포트’의 콘셉트이다. 밀실로 시작하지만, 범인은 바깥에 있음을 암시한다. 근데 과연 그럴까. 이것도 속임수의 속임수가 아닐까.

 

 

기자인 선주(조여정)는 요즘 코너에 몰려 있다. 한 내부 고발자로부터 국내 굴지 대기업의 산업 폐기물 비리 문제를 파헤치며 사회적 대 특종을 준비하던 중에 그녀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잃는다. 하나는 장부, 또 하나는 증인이다. 특히 이 내부 고발자는 어느 날 밤 교통사고로 위장돼 살해당한다. 게다가 신문사 감사팀은 대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약속받고 스스로 장부를 넘겨줬다고 선주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당연히 선주의 이런 사연은 영화 초반부에 구구절절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은 다소 뜬금없이 면도칼 얘기부터 시작한다. 선주는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다. 그녀는 운전자에게 말한다. “예린이 때문에 걱정이야. 요즘 도통 말을 안 해. 그래서 슬쩍 걔 가방을 뒤져 봤는데 면도칼이 나왔어. 걱정돼 죽겠어. 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예린이(황시아)는 선주의 딸이다. 남자는 자기가 한번 대화해보겠다고 말한다. 이 짧은 자동차 내부 씬에서 몇 가지의 실마리가 제공된다. 여자는 지금 자신이 연쇄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어떤 남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이고, 운전하며 같이 가주고 있는 남자는 선주와 친구(이상의) 관계인데 형사라는 점이다. 형사 이름은 상우이다. 한상우 형사. 선주는 백선주. 영화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전개 시키기 전 주요 인물의 배경을 설명해 낸다. 모든 스릴러 영화는 등장인물과 등장인물 앞에 벌어질 일들이 모두 ‘유관’하다. 그러니까 머리가 밝고 눈이 밝은 스릴러 팬들이라면 이런 사전 정보를 놓치면 안 된다.

 

선주는 스스로가 연쇄 살인범이라 주장하는 이영훈이란 남자를 만나러 한 고급 호텔의 펜트하우스로 올라간다. 바로 아래층에는 친구이자 내연남인 한 형사가 대기한다. 둘은 형사와 사건기자 출신인 만큼 도청과 도촬의 최신 장비를 다 동원한다. 안전판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다 마련해 뒀다. 그런데 한 가지, 선주가 호텔 프론트데스크에서 체크인하는 순간 인부들이 로비의 CCTV를 손보는 장면이 목격된다. 호텔리어가 말한다. “지금 호텔 내부의 보안시설을 점검하고 있어요. 곧 끝날 겁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스릴러 영화에서는 단 하나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선주가 만나는 연쇄 살인범, 지금까지 11명을 죽이고 지문이나 흔적을 일절 남기지 않은 용의주도한 범인은 예상대로 매우 깔끔하고 지식인 분위기가 나는 남자이다. 선주는 호텔 방에서 그를 마주한 후 일성으로 비슷한 얘기를 한다. “예상대로 시군요.” 선주는 살인자 이영훈이 화이트칼라 계층의 전문직 남성이라고 봤다. 살인 수법과 범행 은닉의 과정이 치밀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영훈이 정신과 의사임을 대화 초기에 밝힌다. 백선주와 이영훈의 만남의 조건은 단 하나이다. 영훈이 선주에게 독점 인터뷰를 제공하되 선주가 이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면 안 된다. 이영훈은 백선주에게 오늘 밤 누군가가 또 죽게 되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 인터뷰라고 한다. 백선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된다. 무엇보다 이영훈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는가가 고민이다. 연쇄 살인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영훈은 그녀에게 그간 벌였던 살인 행각을 모조리 영상으로 기록해 놨으며 그걸 증거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죽을 대상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한 건가. 혹시 자기 딸 예린은 아닌가. 밀실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서스펜스는 숨이 턱에 닿을 만큼 고조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맥거핀(눈속임 장치 같은 것)이다. 밀실 자체가 맥거핀이다. 나중에 밀실은 몇 가지의 다른 공간으로 확장된다. ‘밀실 안에서 벌어지는 퍼즐의 모든 답은 밀실에 있다’라는 고전적 미스터리극의 어법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영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보면 논리적으로 놓치는 것이 생기고 무엇보다 무리한 비약을 하게 된다. ‘살인자 리포트’도 후반 클라이맥스에서 그런 점들이 보이긴 한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느냐, 아니냐는 그렇게 모든 실마리가 제공된 후, 그걸 관객들이 이해할 만한 것이냐, 받아들일 만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 역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살인자 리포트’처럼 소규모의 ‘탐정 놀이’ 같은 작품은 사회적 맥락 같은 것은 주요 키워드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영화의 이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이다. 사람들을 숨 가쁘게 만들어야 하고 집중시키고 몰두시켜야 한다. 순간순간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설마 이영훈이 죽이려는 또 한 명의 인간이 선주 자신이 아닌가. 아니면 아래층에 있는 그녀의 애인 형사인가. 아니면 설마 선주의 딸 예린이인가. 선주 학교에서 한 피아노 영재의 손가락 사이사이가 예리한 무엇으로 난도질당하는 학폭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자 이때 나온다. 면도칼!

 

‘살인자 리포트’는 2010년대 스페인어권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소규모 미스터리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는 작품이다.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2016)는 ‘자백’(2022)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됐고 콜롬비아 영화 ‘히든 페이스’(2011)는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2024)됐다. 반면 이번 ‘살인자 리포트’는 리메이크가 아닌, 순수 창작물이다. ‘살인자 리포트’는 두 가지 면에서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첫째는 이른바 사회 공권력이 지닌 무능함에 너무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시스템을 지키려는 체제이지 개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처럼 다소 과도한 ‘리벤지 자경단’의 설정은 철저하게 극화된 얘기이지만 전체적인 콘셉트로 잡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범인(정치인 상류층 포함)들에 대해 사람들은 영화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 점을 극대화한 영화가 바로 이 ‘살인자 리포트’이다.

 

 

‘살인자 리포트’는 이 엄혹한 극장의 시대에 제작자와 투자자, 감독과 배우 스태프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치열한 머리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순 제작비는 55억이다. 총제작비는 약 65억 정도일 것이다. 관객은 티켓값으로 1만 5천 원을 내지만 투자 쪽에서 가져가는 객단가는 4300원에 불과하다. 150만 명이 들어야 얼추 64억 5000만 원을 갈음할 수 있게 된다. 모두에게 다 쉬운 일은 없다. 부가 판권 수익을 예상할 테니 100만 명이 고지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작품이 있다. 故 이선균 주연의 ‘잠’이다. 제작비 50억 원을 썼고 80만이 손익분기점(BEP)이었으며 총 150만 명 정도가 들었다. ‘살인자 리포트’ 역시 그 흥행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한국 영화계에 매우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살아가려면 영리해져야 한다. 폭력을 저질러서도 안 되지만 당해서도 안 된다. 영화를 만들어서 너무 독점적 수익을 가져가서도 안 되지만 망하면 더욱 안 된다. 그 안과 밖을 보여주는 영화가 이번 ‘살인자 리포트’이다. 영리한 미스터리가 세상을 구할 실마리를 준다. 과도한 말일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르마는 대중들이 얼마나 재미있어하느냐에 달려있다. 솔직히 말하라고? ‘살인자 리포트’는 재미있다. 재미만 있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에 안 들지만 재미있는 게 요즘 어디인가 싶게 만든다. 현실의 시름과 고민을 잠깐 잊기에는 최고다. 9월 5일 전국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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