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화)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미디어 IN 사회]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입동 지나 가을 깊어지면 농가의 큰 행사 중 하나는 김장이었다. 어김없이 김장철이 돌아왔다. 4인 가족 평균 김장 비용은 어느 정도이고, 무와 배추의 작황은 어떠하다는 보도도 여전하다. 하지만 김장 풍속은 바뀌고 있다. 김장을 하지 않는 집이 많아지고 절임배추는 물론, 버무린 속까지 주문만 하면 집까지 배달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김장은 어느 집이건 긴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의 준비 과정이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무 아람 한 말 얼지 않게 간수하소.” 조선 후기 문인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0월령의 일부이다. 낭만적 시각으로 농촌의 초겨울 김장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여러 식구가 겨우내 먹을 김장을 하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잘 말려 둔 고추를 다듬고 깨끗한 천일염 소금과 곰삭은 젓갈을 준비했다. 마을 아낙들은 집 마당 우물가에 모여 무, 배추를 다듬어 씻고, 파 마늘 생강 다져 양념을 준비한다. 간이 고루 배도록 잘 버무려 차곡차곡 옹기항아리에 넣은 다음 우거지로 마무리한다. 남자들은 양지바른 곳에 움막 지어 보관할 장소를 마련한다. 이렇게 배추김치를 담그고 나면 재료나 양념을 달리하여 다양한 맛을 내는 갓김치, 파김치, 동치미도 담갔다. 모두 마치고 나면 푹 삶은 수육에 푸짐한 배춧속 얹어 맛있게 먹는 뒤풀이로 김장일은 마무리 된다. 김장은 중요한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지만 힘든 일을 함께하는 공동의 정신이 있었고 나눔의 미덕이 있었다.

우리의 김장은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랜 세대를 이어 온 김장문화는 식품으로서의 과학성, 보존의 지혜뿐만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나눔의 공동체 문화는 인류가 보존해가야 할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많이 변했다. 김장 풍속도 변화를 가져왔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보관할 곳은 김치냉장고가 대신하고 있다.

객지에 나와 있는 자녀들이 고향집에 같이 모여 김장을 하는 집안도 있다. 부모님이 애써 가꾼 배추와 무를 재료로 형제간에 안부를 묻고 담소 나누며 함께 김장을 하고 몫몫이 나누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담글 수도 있는 일이지만 부모님의 정성을 생각하는 자녀들의 갸륵한 마음이 있고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정성,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가 김장에는 있는 것이다.

또한 이맘때면 여러 단체에서 김장 나누기 행사를 갖는다. 며칠 전에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서울김장문화축제를 대대적으로 열기도 하였다. 간혹 사진을 찍기 위한 행사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김장,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의 정신과 나눔의 아름다움, 그리고 가족의 의미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주말농장에 채소를 가꿔오고 있다. 올해는 배추와 무를 많이 심었다. 여기 저기 나눠주고 싶은 욕심에서다. 가뭄이 심했지만 풍작이다. 건강하게 자란 김장밭을 바라보면 걱정이 앞선다. 운반하고, 다듬고, 절이고, 양념 장만하는 일을 생각하면 나눠 주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웰빙시대, 자연발효식품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장수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치의 세계화를 위한 김치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김장에 내포된 나눔과 협동의 정신, 조금 불편하고 힘든 것을 감수하면서 그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던 그 시절의 인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배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