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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세치 혀가 길어진다

세치 혀가 길어진다

                                        /우희숙



식물인간 남편의 몸을

그녀가 혀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종일 쉬지 않고

한 여름의 선풍기처럼

혀가 세상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풀어낸다

쓰러진 갈대를 흔들어 세우는 바람처럼

혀는 구석구석 남자의 몸을 더듬는다

세치 혀가 길어진다 자꾸만 이야기가 길어진다

바람의 길로 말들이 길게 쏟아져 나와

텅 빈 창자의 여린 섬모를 꽃 대궁처럼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부드러운 혀끝이 드릴처럼

뼈 속까지 깨우러 들어가는 고단한 하루

단단해지는 혀가, 금방이라도

척추를 일으켜 세울 듯 검붉다

- 우희숙 시집 ‘도시의 쥐’

 



 

절박함은 그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함을 불러온다. 언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행위가 표출된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인 남편은 식물인간이다.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은 없으나 호흡과 소화, 흡수, 순환 등의 작용은 계속되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한 남편을 간호하는 부인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남편을 깨어나게 하고 싶다.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세상 이야기를 풀어내며 ‘일어나라 일어나라’ 남편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간다. 뼛속까지 드릴을 박는 혀는 날이 갈수록 검붉어진다. 저 애타게 두드리는 의식의 문은 언제 열릴까, 고달픔은 아픈 자를 간호하는 자가 피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는 눈물겨운 사투다. 온종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부인의 혀, 비록 소음 같을지라도 주입되는 그 의지가 남편에게는 무엇보다 잡고 싶은 열쇠꾸러미일 것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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