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일 년 조금 남짓했던 시절, 아직은 새댁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결혼하고 첫 해는 지독한 몸살감기로 꼼짝도 못하고 앓아눕는 바람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으니 사실상 처음 맞는 성탄절이었다. 그것도 전날부터 쏟아진 함박눈에 하얗게 빛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우리는 성탄 자정미사를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축일이라 일찍 가려고 서둘렀지만 출장 간 남편이 눈길에 귀가가 늦어져 먼저 가기로 했다. 눈길이 미끄럽고 춥기도 했지만 마음이 벅찼다. 결혼하고 바로 시댁에서 살던 우리에게 사실상의 신혼은 없었다. 이런저런 일로 남편과의 외출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기에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만의 시간을 갖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며칠 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자리에 앉아 성가를 부르는 동안에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아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도 조금씩 남의 얘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빛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는 동안 거꾸로 내 불안은 커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내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미리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야 했으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찾아오기로 하고 나는 그냥 성당으로 오는 바람에 나는 아무 준비도 없었다.
드디어 예물 봉헌을 준비하는데 가방을 뒤져보니 언젠가 남겨졌던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손에 잡혔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 순간에는 동전이 금덩이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예물봉투에 그 동전을 소중하게 넣고 봉헌을 하려고 일어서서 몇 발자국을 옮겼을까, 땡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은 내게서 점점 멀리 굴러갔다. 하필이면 밑이 타진 예물봉투를 집었을 줄이야! 우아하게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겨우 동전 하나를 예물로 바치는 여자를 사람들은 어떻게 볼 것인지 순간 얼굴은 온통 불길에 휩싸이는 듯 했다. 저만치 한참이나 굴러가던 동전이 반짝였다. 처음엔 재빨리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도 했으나 동전은 생각보다 빨랐고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내가 콩알만 하게 줄어들어 어디로 숨고 싶었다. 어떻게 미사가 끝났는지도 몰랐다. 서로 축복 인사를 나누며 사진도 찍고 성탄잔치로 떡국을 먹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은 더 미끄럽고 춥고 가로등이 없는 곳을 지나 올 때는 멀리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에도 섬뜩하고 뒤에서 오는 발소리에 종종걸음을 쳐야했다.
뎅그러니 초저녁부터 비어있던 방은 썰렁했다. 그 밤을 불안과 원망 속에서 뜬눈으로 새웠다. 아침에 돌아온 남편은 가파른 고갯길을 넘기 위험하다고 차량통제를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 후배 집에서 잤다고 했다. 요즘이야 휴대전화로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지만 그 때는 면 소재지에나 교환이 연결해 주는 전화가 있었고 시골에는 전화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었고 그 후배의 집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기는 해도 성탄이브에 성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화도 나고 서럽기도 해서 저절로 눈물이 나고 남편한테 분풀이를 하고 싶기도 했지만 시금치가 무서워 꾸역꾸역 참고 지나갔다.
얼마 있으면 곧 성탄절이다. 해마다 성탄절은 돌아오지만 선물이나 카드도 좋겠지만 농담조로 은퇴하신 산타할아버지 대신 축복의 말과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날이 된다면 하늘의 영광 못지않은 평화가 온 땅에 넘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