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저녁이면 필자는 문득 일본 오차노미츠 대학의 마스다 마사루(增田優) 교수를 떠올려 보곤 한다. 오늘 처럼 함박눈 펄펄 내리던 일본 출장 길에 동경에서 마스다 교수를 만났었다. 그는 자율적 개방학습네트워크(Voluntary Open Network Multiversity)를 지향하는 일본의 지식협동조합인 ‘치노이치바(知の市場·Free Market of·by·for Wisdom)’를 처음 시작한 학자이다.
일본의 신 지성파 그룹 몇몇이 생각을 모아 시작한 학습나눔시민운동의 일환인 치노이치바는 필자에게 오랫동안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수였던 그가 2003년 지식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결국 교육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은 교육격차에서 발원되는 것인 바, 그 치유책은 결국 또 다른 방식의 교육과 학습의 공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하곤 했다.
치노이치바는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 즉, ‘서로 서로 배우고 서로 서로 가르치자’는 자율적인 호학호교(互學互敎)이념에서 출발한다. 물론 모든 것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며 기쁨과 보람으로 참여한다.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 뜻에 동참하는 지성인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비를 부담하며 스스로 원해서 멀리 일본까지 날라와 한국의 문화와 예술과 역사를 일본인들에게 기꺼이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도 평생교육실천가들과 학자들 몇몇이서 동경을 찾아 그를 만나 지혜나눔운동의 총본산인 치노이치바의 최근 동향을 들을 수 있었다. 2003년 시작한 치노이치바의 수료자는 벌써 1만6천여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시작점에서 불과 10년여 밖에 안 되는 시간에 어느새 그들은 일본 열도의 학습을 마치 혁명처럼 뒤바꿔 버릴 거대한 학습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었다.
제도화된 강의에 갈증을 느낀 전문가들이 대거 치노이치바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강의는 마스다 교수가 재직하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등 주로 됴쿄 시내 대학들의 강의실을 빌려서 한다고 한다. 치노이치바의 이념을 지지하는 대학들이 무료로 강의실을 빌려주고 있고 독지가들의 기부도 있다고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학습공동체를 ‘이치바(시장·市場)’라 부르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선선히 ‘무료’라는 개념 그리고 누구든지 출입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출입 제한이 없는 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답한다. 가히 통상적인 시장의 개념을 넘어선 초(超)시장적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필자가 그에게 물었다. 모든 것이 돈 없이 무료로 이루어지고, 각자가 자비를 대어 운영하는 이 시스템이 과연 어떻게 이렇듯 오래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를. 그는 미소 지으며 당당하고 여유있게 답을 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이렇듯 줄지어 모이고 함께 마음을 모아 임하는 데 무엇이 문제될 게 있습니까? 돈이 왜 중요합니까? 돈 보다 더 중요한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하는 마음과 생각’이 있는데요….’. 이런 철학과 생각들이 일본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교수이자 학자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100년의 학습을 지향하며 생애학습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필자에게 유독 강한 긴장감을 일게 하던 마스다 교수의 마지막 말이 지금까지도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