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색깔이다. 씩씩함이 강요된 시퍼런 제복, 성공을 다짐하듯 꾹꾹 눌러쓴 각진 모자, 두리번거리는 깊은 눈망울들…. 수완나 품 공항 A6출구에 흩어져 눕거나 웅크린 채 출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은 미얀마라는 영문자 나라이름을 등허리에 붙이고 있었다. 낯익은 한글이 써진 크고 노란 패찰,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젊은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운 나라 조국을 떠나 춥고 낯선 대한민국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그들을 나는 별이라 생각했다.
별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일수록 더 빛이 나는 별. 한 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낯선 나라로 떠나고 또 떠났던 우리들의 별을 생각해보았다. 가난한 조국을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줄줄이 떠났던 별들의 길은 또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을지 나는 짐작할 수도 없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다시 마주한 그 나이어린 이국의 젊은이들은 줄을 지어 안내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린 그 별들이 부디 그들의 앞날을 환하게 비추어주길 바라며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유타야 유적지의 토막 난 석상들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본 아유타야 유적지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수백 년 방치된 도시의 실체. 한 때의 그 화려했던 아유타야의 부귀영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각인 시켜준 파괴된 도시. 방치된 사원, 무너진 탑, 허리가 잘리거나 사지가 절단된 불상, 머리만 나뒹구는 숱한 석상, 불상들. 보리수나무 뿌리에 뒤엉켜 수백 년 견뎌온 잘린 불상의 머리를 보는 순간은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었다. 한 때 태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건 그 옛날 미얀마였다고 했다. 그렇게 잔혹하게 짓밟아 수도를 방콕으로 몰아냈던 침입한 나라 미얀마의 현실을 보면, 그 화려했던 한 때의 영화 또한 영원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물처럼 흘러 돌고 도는 부귀영화, 그 허허로운 아유타야의 진리를 보노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에 쫓겨 마음의 여유를 잃은 나나, 취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나, 회사를 그만두고 깜깜한 현실 앞에 놓인 장년의 또 다른 그대, 조국을 떠나 이국으로 떠도는 어린 그 별들 모두. 우리 앞에 뜬금없이 다가서 마음의 평화를 안겨줄 그 기회의 순간을 기다려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물처럼 흘러 돌고 도는 것이 진리라면 말이다. 물론 분에 넘치게 화려한 부귀영화의 기회라면 부담스러워 금방 놓아버릴 수도 있겠지만 어떤 형태의 꿈이든 꿈 꿀 수 있다는 건 곧 현실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울지 않는 새, 울 때까지 기다려라’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꿋꿋한 인내와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더하여 언젠가 때는 온다는 확신을 갖고, 미리 좌절하거나 절망해서도 안 될 것이다. 깜깜한 현실 앞에서도 그저 묵묵히 준비하고 오늘을 걷다 보면 마음 넉넉한 내일에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담긴 수완나 품 공항에서 만난 그 별들도, 우리의 청년들도, 또 다른 숱한 별들도.
▲‘시와사상’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