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100세 인생’이란 노래가 마치 국민가요처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노래 가사가 자못 흥미롭다. 팔십 세도, 구십 세도 아직 쓸 만하여 떠날 때가 아니니, 못 떠난다고 ‘전하라’ 한다. 100세에 이르러 데리러 온다면 내 알아서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하라’고 한다. 150세에 데리러 온다면 이미 극락세계에 와 있다고 ‘전하라’ 한다. 100세 시대를 넘어 가히 150세 시대의 구가가 눈 앞에 다가온 듯 인생의 ‘넉넉함’과 ‘배포’가 배어난다.
얼마 전 뉴스에서 70·80대 할머니 3인방이 모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위수여식에서 ‘시니어리더상’까지 받으신단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함께 ‘늦깎이’ 공부를 하시며, 학점은행제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번에는 단숨에 석사학위를 거머쥐시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단 한 번 결석도 없이 매 학기 성적우수 장학금까지 받으며 공부하셨단다. 침침한 눈에 돋보기를 쓰고, 일구어내신 만학 할머니들의 위력을 자아낸다.
역시 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미국 뉴저지 주 노스플레인 필드 ‘선댄스 학교’의 아그네스 젤레스니크라는 아주 특별한 ‘102세 할머니 선생님’의 스토리 또한 대단했다. 1914년 1월12일생인 할머니는 81세때인 1995년 다른 노인들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때 새롭게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학교 교사인 딸과 함께 등교하여 주 35시간씩 유치원생부터 5학년 학생들에게 요리와 바느질을 가르치신단다. 연극에 입을 의상을 만들어 주고, 그걸 아이들이 입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102살의 할머니 선생님, 그녀는 이 일을 오래도록 계속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단다. 100세 시대 이런 할머니들의 삶의 고군분투기는 그 자체로 이미 우리에겐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새해 들어 필자의 제자가 9년여 공부 끝에 늦깎이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논문 주제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50·60대 늦깎이들의 박사 공부 고군분투기’였다. 자전적 내러티브를 담은 박사 논문에는 늦깎이들의 공부 과정에 담긴 삶의 애환과 모티브, 마치 ‘작은 영웅기’ 같은 대단한 박사공부 ‘고군분투기’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필자는 논문을 읽어 내려가며, 그들의 삶에 응축된 애환과 아픔과 고통을 공감 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여러 차례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산고(産苦)보다 진한 늦깎이만의 학고(學苦)를 겹겹이 애절하게 겪으며, 까마득히 나이 어린 동학들과 ‘버겁디 버거운’ 힘겨운 공부를 해내고 마침내 박사학위를 거머쥔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회상하고 있었다. 한 평생 흘릴 눈물을 박사 공부하며 다 흘린 듯하다고 말이다. 일과 학업과 가사를 병행하는 ‘삼중고’ 속에서 수십 번을 포기했다, 다시 시작하는 방황을 거듭했단다. 살고 싶으면 공부를 당장 중단하라는 의사의 최후통첩을 받으면서도 끝내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그들, 링거 병에 주사 바늘을 꽂고도 수업 만큼은 빠지지 않았던 그들, 그들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늦깎이 박사들이었다.
그들은 왜 박사가 되려 했을까? 처음 그저 박사학위 자체가 탐나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에서 겁 없이 시작한 박사공부였단다. 그러나 그 욕심스러운 ‘작은 시작’은 이내 길고 긴 박사공부의 터널을 건너며 진정한 ‘나 다움’을 찾아 가는 배움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치 도를 닦는 사람들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그들은 그렇게 성찰적인 100세의 학습 여정을 만나고 있었다.
환갑 넘어 거머쥔 학위논문을 보며 가슴이 벅차 계속 눈시울을 붉히는 늦깎이 박사 제자들을 바라보며 지도교수인 필자는 오히려 그들에게 배운다. 공부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은 그들이 대단하다. 나이를 잊은 그들이 자랑스럽다. 가르친다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늘 ‘배우는 여정’이다. 무엇을 위한 준비로서가 아니라 배움은 그 자체로 삶이다. 그렇기에 배움이 끝나면 인생도 함께 끝난다. 린드만 선생의 오랜 가르침을 회상하며 듣다 만 ‘100세 인생 노래’ 한 자락을 다시금 흥얼거려 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둘이 하나로 잘 통한다. 제자들은 가르치는 나의 가장 ‘큰 스승’이었다. 그들에게 크나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00세 시대 늦깎이 어른 학생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