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닥친 한파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린다. 수도 동파 소식이 들리고 보일러 고장에 자동차에 아우성이더니 드디어 한강도 얼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두꺼운 옷에 머리까지 덮어쓰는 모자가 달린 코트나 점퍼를 입고 거의 눈만 빼꼼 내놓고 다닌다. 우리 동네는 무슨 자랑이라고 추위로 금메달을 기록한다. 인접지역인 춘천보다 춥고 위도 상으로 훨씬 위쪽에 있는 철원보다 더 추웠다. 그럴라치면 지인들의 안부전화가 온다. 청정지역이라 공해가 없어 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추위는 생각 이상으로 제약이 많았다. 하도 춥다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일도 있었다. 어느 집에서 개가 무엇에 다치기라도 한 듯 짖어대기에 달려 가보니 혀가 밥그릇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그릇을 매달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 얼른 더운 물로 녹이고 다음부터는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한 참을 웃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새겨 볼수록 수긍이 가는 말이다. 입춘이 지나고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추위가 하루하루 풀리고 설날부터는 봄날처럼 포근한 날이 이어졌다. 연휴 내내 북새통을 이루던 집이 시간 공간 양면이 헐거워지면서 평정을 찾는다. 제일먼저 신발장이 단출해지고 설음식 준비를 하느라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커다란 그릇도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하다못해 흘리고 간 칫솔도 따로 정리를 해 두었다. 볕이 좋은 한나절 바람도 부드럽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잠시 길에 나오니 늘 그 자리에 둘러앉은 산이 멀찍이서 나를 건네다 본다. 아직 얼어붙은 땅과 해쓱하게 마른 풀이 겨울의 막바지를 지키고 있다.
자세히 보니 허름한 이웃집 담 넘어 목련나무가 간간이 빛을 보내고 있다. 봄만 되면 나를 설레게 하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내 눈과 발걸음을 붙드는 목련나무다. 가을이면 대개의 활엽이 단풍으로 물들 때 푸른 잎새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갑옷을 지어 입히느라 아무런 빛깔도 내지 못하고 숨을 거둔 낙엽이 아직 더부룩하다. 살아서 옷을 지어주고 죽어서 이불이 되어주는 잎을 보면서 우리네 부모들의 삶을 닮았음에 숙연해 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갑옷 속에서 겨울을 견딘 꽃망울이 햇빛을 받아 저녁 무렵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가올 봄을 향해 출발하는 겨울나무의 다짐을 그렇게 빛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기습한파에 웅크리고 불평을 하는 동안 나무는 봄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봄이 오기 전에 자신이 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준비를 쉬지 않았다. 언 땅을 뚫고 물이 있는 곳까지 뿌리를 뻗고, 매운바람 속에서 향기를 담고, 눈보라 속에서 눈송이처럼 깨끗한 빛을 골랐다. 겨울나무는 봄보다 앞서 봄을 준비한다. 땅이 풀리면 우리 집 바로 옆에 새로운 상가를 짓기 위한 공사가 시작된다. 내 마음 같아서는 꽃이 필 때까지만 기다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또 나무가 가려지면 내년부터 목련나무를 못 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마음에 들어선다.
제주를 시작으로 저녁에는 우리나라 전역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반갑다. 봄비였으면 하는 기대도 있고 연휴에 힘들었던 몸을 피로를 비 핑계로 하루쯤 쉬어 가고 싶다. 겨울나무처럼 쉬는 동안 봄살이 궁리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