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면서 감기몸살이 왔다. 어지간한 건 몸이 견뎠는데 세월 탓인가 긴장 탓인가 제대로 걸렸다.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다리를 펴도, 허리를 웅크려도 좀처럼 편한 자세가 없다.
약 상자를 뒤적여 대충 몸살감기에 먹을 만 한 약을 털어 넣고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밤이 왜 그리도 길고 사념은 뭐가 그리 많은지 세상의 고뇌는 다 짊어진 듯 계속 뒤척인다.
새사람을 들이고 나니 걱정이 많다. 일을 시켜도 눈치가 보이고 어디를 데리고 나서도 걱정이 된다. 갓 결혼한 새 신부니 한복 입기를 주문했다. 곱게 차려 있고 큰댁에 갔는데 집이 춥다.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라 발이 시리고 몸이 떨린다. 그러니 얇은 한복을 입은 새댁은 내색도 못하고 얼마나 추울지 걱정이다.
큰댁에 가기 전에 편도가 좀 부은 것 같다며 약을 챙겨 먹고 나선 길이라 더 불안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이 앞섰지만 작은 집에 갓난이도 있는데 유난 떠는 것 같아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마음 같아선 쉬게 하고 싶지만 결혼 후 첫 명절이고 서로 부딪치면서 가족 간에 화합과 정도 들지 싶어 그냥 나뒀다.
바지런한 성격이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일을 해야 하니 그 위에 외투를 걸칠 수도 없고 모른 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댁이 열이 오르고 콧물이 났다. 서둘러 친정을 보내는 길에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친정에 있는 동안 내내 앓은 눈치다. 영 마음이 불편하다.
이래저래 맘고생을 해서 인지 나도 감기몸살이 세게 왔다. 몇 년간 버틴 고통이 한 몫에 몰려드는 듯 했다. 어지간해선 병이 나지 않는데 한번 병이 나면 코에서 단김이 올라올 정도로 앓아야 털고 일어난다.
열이 오르고 숨이 차고 몸이 땅 속으로 꺼지는 듯했다. 누워 있으면 이러다 정말 죽지 싶어 일어나 앉았다. 거실로 나와 살아있음을 확인하듯 TV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무엇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야할 것 같아서 채널을 돌리고 또 돌렸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명절이 기다려졌다. 어릴 때는 그냥 기다려졌고 객지에 나가 있을 때는 가족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결혼하면서부터 이름 정해진 날이 오면 기다림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장손이 아니다보니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부담은 덜하지만 명절 내내 부엌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일가가 모여서 제를 지냈다. 수십 명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제를 올리기 때문에 점심 무렵이 돼야 차례지내는 일이 끝났고 어른이 계시다보니 인사 오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손님 대접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은 시누이 치다꺼리에 친정 갈 엄두도 못 냈다. 그때는 감히 친정 보내 달라는 말은 하기는커녕 이제나 저제나 눈치만 살피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다르다. 자기들 주장이 확실하고 경우에 어긋나지 않은 정도로 요구도 한다. 나 역시도 구태의연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지만 세월의 변화이고 세대의 변화이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시댁이 그리 편치는 않겠지만 시어머니 또한 며느리가 조심스럽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더구나 첫 명절부터 병이 났으니 걱정이다. 나도 날이 밝으면 주사 한 대 맞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