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새 학년의 시작이다. 새 학년이 되는 학생도 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새 출발하는 때인 만큼 학생은 학생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기대와 긴장을 갖고,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길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친정 조카도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일요일과 방학을 반납하고 학원으로 개인과외수업으로 최선을 다했다. 부모의 성화도 있었고 아이 또한 본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그 때문인지 더 열심히 공부한다. 상급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기 위해서다. 물론 미리 예습을 하고 수업에 임하면 학습효과가 상승되겠지만 흥미나 열정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고 대학입시에 가기도 전에 지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걱정도 된다.
학교 앞 학원가에 보면 출신학교와 학년 이름 그리고 그 학생의 평균성적과 과목별 성적이 걸려있다. 넓은 유리면을 꽉 채우고 있는 현수막에 인쇄되어 있는 성적을 보면 과히 자랑할 만 하다. 평점 100점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아이들 성적이 90점 이상이다. 그 학원을 다녀서 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한 것인지 혹여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골라 받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우수한 성적들이다. 다음 시험에 성적이 바뀔 때까지 현수막은 걸려있다. 학원 주변이 아파트 단지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름만 봐도 누구네 집 아이인지 또래 부모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찔한 일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랑스럽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과 부모는 속상하고 기막힐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나열해 놓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노출한다는 것은 그들의 인격과 이미지에도 큰 손상을 주는 행위이다.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아이들인가. 이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잣대에 올려놓고 평가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서슴없이 행하고 있다. 학생의 인격이나 재능은 무시되고 오로지 성적순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성적만큼 대우받는 그런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공부는 좀 부족해도 성격이 좋은 아이도 있고 공부는 좀 떨어져도 손재주가 있는 학생도 있다. 똑같이 공부만 잘 할 수는 없다. 각자 타고난 재주가 다르고 학습효과도 다르다. 개성과 취향에 맞는 맞춤식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학원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상업적 목적이 크겠지만 1등이 있으면 꼴찌도 반드시 있은 법이다. 꼴찌가 있기에 1등이 빛나는 것이고 성적 1등이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학생의 신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내 자식만은 좋은 성적의 소유자이길 바라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오히려 자식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본인의 못다 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대리만족은 위험한 생각이다. 자식을 정확히 읽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식과 부모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자식을 성적순으로 평가하지 말고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학생의 성적표를 내거는 학원에 맡겨진 아이들보다는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이 땅에 밝은 미래를 제시할 동량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