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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란

/정원숙

바람이 불어도 나는 가볍게 흔들리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나는 무겁게 촉을 세운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는 두렵게 생을 두드리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는 서럽게 생을 연다.



어떤 이는 바람을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바람을 거스르며 자신의 길을 간다.



바람이 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날이면

나의 등경엔 촛불이 밝혀지고



바람이 내 속을 살랑살랑 비우는 날이면

등줄기마다 푸른 실핏줄이 돋는다.

바람이 날마다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쓰러지지 않을 만큼 슬픔을 끌어안는 것이다.



내가 날마다 바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슬픔도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천국을 쫓기 위해 어지럽고

나는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고요한 투쟁을 계속한다.



바람은 다시 불고

나는 전심으로 바람의 촉을 붙든 채



내 정신을 비점沸點까지 끌어올린다.

- 계간 ‘시산맥’ 2013년 봄호에서 발췌

 

 

 

내가 만난 정원숙의 시는 대부분 길다. 그러나 장점인 것은 길면서 긴 감동과 여운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원숙의 시는 길어야 맛이 난다. 짧은 시 긴 감동, 긴 시 긴 감동에서 긴 시는 그 길이만큼 읽어가면서 감동의 비점(沸點) 시의 沸點까지 끌어올리는 시인의 태도가 보인다. 긴만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를 향유하게 한다. 풍란은 바람과의 천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다. 바람이 셀수록 풍란은 살아있음을 마음껏 노래한다. 삶의 의지를 다진다. 풍란이 바람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거친 바람이 풍란을 만나 순화된다. 풍란은 바람 속에서 살아야 비로소 싱싱한 존재감으로 잎과 드러난 뿌리, 꽃이 빛난다. 풍란은 제 생을 바람으로 담금질해 극점의 노래인 꽃을 피운다. 우리가 만나는 삶의 어려움도 우리에게는 부는 바람이다. 우리도 생의 꼭대기에서 고고하게 세우려는 바람의 노력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 속에서 우리도 살아있자. 살아있다는 것이 지상에서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지금은 늘 좋은 시로 시인과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정원숙 시인의 시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영광의 순간이다. /김왕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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