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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칼럼]피로 회복 권하는 사회

 

피로 회복? 참 이상한 표현이 여전히 출현 중이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별 의식 없이 쓰는 듯 ‘피로 회복’이 자주 발견되는 것이다. 상투적이든 관습적이든 익숙해진 표현들을 그냥 쓰는 무심함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런 것쯤 틀리는 게 뭐 대수냐는 우리네 특유의 대범함의 위력일까.

실제로 검색어에 ‘피로 회복’을 넣어보면 줄줄이 달려 나와 전국민의 피로 회복화인가? 갸웃거릴 정도다. 피로를 ‘회복’하면 더 피로하니 ‘해소’라야 맞다는 지적이 꽤 나왔건만 요지부동인 것이다. 더러 ‘피로 해소’나 ‘원기 회복’으로 바꿔 쓰는 곳이 보이지만 ‘피로 회복’은 여전히 많이 널리 쓰인다. 그런 상황이라 ‘모백과사전에서는 ‘글자 그대로 보자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피로를 회복시켜준다는 의미이니 피로한 상태를 계속 지속시켜준다는 뜻’임을 확인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이 말이 엉뚱하게도 피로를 없애주고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고 풀어놓고 있다. 다른 지식백과에서는 ‘적절한 휴식과 영양공급을 통해 신진대사를 원활히 함으로써 피로 증상이 제거된 상태’라고 설명하니, 언어의 전도 현상이다.

그런데 이 야릇한 표현은 애초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문득 궁금해 유래를 짚어보면 의구심이 모제약회사의 드링크제 광고 문구로 모아진다. 1963년 출시된 그 회사의 ‘피로 회복’ 드링크제는 판매 1위를 거침없이 달려온 최장수 자양강장음료로 꼽힌다. 지금도 ‘세계인의 피로 회복제’를 꾀한다고 신문에 소개될 만큼 회사로서는 대표적 음료이자 우리 뇌리에도 ‘피로 회복’표 음료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다. 아무튼 처음부터 써온 표현이고 상징성이 커서 안 바꾸는지는 모르지만, 유구한 역사의 피로 회복제를 부제처럼 달려 내보내며 일종의 추종을 낳고 있다.

제품 이름은 회사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건강을 앞세운 많은 제품들이 그것을 따라하듯 ‘피로 회복’을 오남용한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말을 무신경하게 쓰는 일반 글이나 지면을 계속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불편한 건재는 우리가 언어를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습관적으로 쓰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피로 회복을 맞닥뜨릴 때면 피로지수가 확 높아지며 ‘피로를 회복해서 더 피로해지라고?’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나아가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피로지수를 비꼬거나 환기하기 위해 모른 척 그냥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굴려보는 것이다.

그런데 틀린 표현들은 의외로 자주 나와 우리네 피로를 가중시킨다. 아직도 전문가조차 ‘다르다’를 ‘틀리다’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신경이 쓰여 언어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까다로운 언어 습벽 탓이라고 웃을 수 있겠지만, 누적된 피로사회에서 연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슬며시 바깥 탓을 해본다. 오죽하면 우리 사회를 ‘피로사회’(한병철)로 읽어낸 진단이 나왔을까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과로사회’니 ‘자기착취시대’를 예사로 쓰는 시절 아닌가. 그런 와중에 누적된 피로를 ‘해소’해도 모자랄 판인데 ‘피로 회복’이 도처에 횡행하니 결국 만성피로의 조장이 아니냐는 심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만성피로의 주범으로 꼽혀온 ‘술 권하는 사회’만큼이나 피로 회복 권하는 죄도 작지 않다는 생각이다.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권커니 잣거니 마시는 술이 오히려 피로를 높이듯, 표현에서부터 피로를 회복하게 만드는 셈이니 말이다. 이래저래 ‘피로 회복’이란 것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네 삶의 꼬리표로 달고 살아갈 것인가 씁쓸해진다.

그건 아니려니, 만성적자 같은 만성피로 속에 표현의 피로라도 피하고 싶은 투정이다. 여기서도 피로를 만날라 걱정하며 토를 달자면, 피로는 회복하는 게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다. 연인의 속삭임처럼 졸음이 달콤한 봄날, 피로를 말끔히 해소해야 다시 찾은 꽃들도 더 눈부시게 즐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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