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멍
/김보숙
다리에 깊스를 한 그녀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
녹이 슨 그넷줄에 머리를 기댄 그녀가 휘파람을 분다.
그네를 타고 있는 이국여성의 휘파람이 멎은 골목을 흘러 다닌다.
쓰러진 목발을 그네 곁에 세워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와
세워진 목발을 또다시 쓰러트리는 겨울바람이
오늘 그녀가 본 이국의 풍경이다.
이곳은 아플 때 휘파람을 불지 않아요.
부디 호흡을 삼가해주세요.
휘파람을 불고 있는 그녀의 입술에 하얀 눈이 내린다.
석고가루처럼 휘날리다가 입술을 붙인다.
- 계간 ‘아라문학’ 가을호에서
인간이 고립되다 보면 끝내는 사물화 된다.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할 때 인간은 가장 커다란 절망에 빠진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이고,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 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 받지 못할 때에 인간은 곧 사물화 된다. 적어도 이국화 된다. 멍이라는 상처는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올 때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오는 것이 치명적이다. 온몸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는 것은 그래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살아 있어 우리는 사랑도 한다. 살아 있음에 축배를 들자.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