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변
/유지소
그 해변에서는 가벼운 화재도 사소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있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해변은 지루해서 지루해서 지루해서 작은 모래알은 더 작은 모래알을 질투하는 것이다 더 작은 모래알보다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위에 세우는 것이다 벼랑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가 넘어지는 것이다 그 해변은 그렇게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까이 세계의 끝으로 다가가고야 마는 것이다
-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모든 시적 언어는 응시라는 라캉적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토록 집요하게 사물과 마주할 수 있다니! 고백을 고백하지 않는 시, 고백적 목소리임에도 풍경을 자신의 내면에 비춤으로써 새로운 심미적 도취에 이르도록 이끄는 시, 해변의 모래를 뚫어지게 응시함으로써 일상성에 대한 사변적 치열함을 보여주는 시, 독자는 화자의 심상에 이끌려 그 해변에 도달한다. 그리고 적막의 한가운데 서서 모래끼리 질투하고 넘어지고 결국 세계의 끝으로 사라지는 허망함을 추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유의 언어 운용이 이 시의 백미다. 더더더~~~작아지는 모래가 발끝을 아무리 세워도 벼랑일 뿐인, 모래를 넘어~~~가도 가도 모래뿐인 곳, 그리하여 존재의 무화를 목도하게 되는 광경을 문자의 형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야말로 시인의 고백적 내면을 발현하는 절묘한 장치인 셈이다. 그 해변에 가고 싶다. 거기서 사무치도록 고독과 마주하고 싶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