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기억들
/이민숙
동백은
삭풍에 매 맞던 기억으로부터 깨어난다
꽃이 자지러지는 향기로
생식기를 열어젖히는 까닭은
눈보라 속에서도 얼지 않는다는 어기찬 선언이다
그대 감미로운 노래,
먼 겨울 전율로부터의 몸부림이다
툭,
끊어진 하룻날의 목숨
서글퍼하지 않으리라
개골창 속 발 담근 민들레 같은 그대
연민마저 보내지 않으리라
살얼음 녹이는 몸짓이여!
매서운 바람 무릎 꿇어 품으리라
파리하게 아프게
몽글몽글 솟아나는 기억들
슬금슬금 피해가지 않으리라
-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 애지/ 2015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방법입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동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억을 지우는 일은 과거를 삭제하는 거며 현재를 거부하는 일이며 미래를 외면하는 겁니다. 아픈 기억일지라도 잊지 않는 순간 오늘 나는 살고 있다고 동백은 소리쳐 피어납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어기찬’, ‘몸부림’이며 ‘서글퍼하지도’, ‘연민’하지도 않는 ‘몸짓’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억의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동백은 온 몸으로 말합니다. 겨울, 꽃이 없는 시절에 홀로 봄빛을 자랑하는 동백!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