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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칼럼]꽃차례를 수소문하다

 

꽃차례가 없어지고 있다. 무슨 난리라도 터진 양 봄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피는 것이다. 꽃 피는 순서가 해마다 희미해져간다 싶더니 올봄엔 더 성급하게 앞을 다투듯 꽃폭죽이 동시다발로 터졌다. 그렇게 꽃난리를 천지사방 벌여놓고는 판돈 거두듯 뒤도 안 돌아보고 황황히 떠나는 게 봄꽃들의 행태로 자리 잡아간다고 할까. 꽃 피는 순서라도 수소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네 봄날이 갈수록 심상치 않은 것이다.

철없어진 봄꽃들의 개화는 개나리가 확연히 보여주었다. 병아리 주둥이모양 노란 꽃잎들이 뾰족뾰족 입술을 내밀다 꽃잎이 활짝 열리고, 그 꽃잎이 지면서 연초록 새 잎이 나오는 게 그동안의 낯익은 개화 순서였다. 그런데 이런 차례 없이 단번에 꽃과 잎이 피어 진달래며 목련이며 벚꽃 등과 서로 질세라 어우러진 것이다. 갈수록 흐릿해진 꽃의 순서는 올해 특히 개화의 경계 같은 것마저 치워버린 느낌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수수꽃다리마저 덩달아 서둘러 피고 있다. 이른 봄꽃들이 차례차례 지나간 뒤 오월의 느른한 미풍에 피어나 고샅마다 향을 실어 나르던 수수꽃다리도 순서 잃은 개화 행렬에 가세한 것이다.

그렇게 봄꽃들의 동시다발 방문을 톺아보자니 뭔가 잃어버린 듯 허전해진다. 봄꽃들이 제 순서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저의 때를 놓치기 전에 안간힘을 써서 꽃을 피우고 가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꽃도 스트레스를 받아 핀다는데 기후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얼마나 힘들면 일찍부터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일에 저리 애를 쓸까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피고 지는 순서를 잘 지켜온 꽃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환경오염 탓에 개화의 적기(適期)며 질서 등을 잃고 후다닥 핀 셈이다. 그동안 아무런 청탁 안 해도 때 되면 알아서 꽃피워주고 향기며 열매며 아낌없이 주고 간 꽃들의 철없어짐에 어떤 대비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돌아보면 봄꽃들의 제때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도 제철이라는 적기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때때로 개그 같은 개탄을 주고받으며 서로 끄덕이기도 한 것이겠다. 철없어진 채소 과일 마음대로 즐기더니 상위 포식자들도 철이 점점 없어져간다고. 사실 제철과 상관없이 마트에 쌓인 과일을 아무 때나 집어들 수 있게 한 과학기술도 우리 욕망의 귀결이고 보면, 그에 따른 영향을 돌려받는 게 너무나 지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철이라는 기준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소신이 아니라 때에 대한 감각이며 감정의 변형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문제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짐으로써 기다림에 필수조건으로 따라붙던 참을성도 점점 없어지니 말이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시도 때도 없이 골라잡을 수 있는 거대한 편의점 같은 세상. 그 안에서는 기다림이라는 오래된 감정이 미덕은커녕 시간의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욕망의 간편한 해소 앞에서는 기다림에 수반되는 참는 고통이며 숙성의 의미도 부질없어 보이기 십상이다.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겸허한 숙성에 반해 인공으로 최적화한 빠른 숙성들이 시시각각 대령하는데 기다림에 시간과 노력을 소모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못 기다리고 못 참는 세태는 갈수록 성마르고 강퍅해지는 사람들의 과격한 감정 표출이 야기하는 사건 사고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철없어진 과일을 즐기다 철없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자조와 염려 뒤섞인 우스개가 실감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꽃차례가 없어진 게 꽃들의 새 길 찾기라면 서운히 여길 일은 아니다. 봄꽃들이 한꺼번에 핀다고 제 소임을 다하지 않을 리도 없으니 새삼스럽게 차례를 묻지 않는 게 예의 같다. 우리가 초래한 환경 변화의 결과라는 점에서 도리어 잘 받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두근대며 꽃차례를 기다리듯, 기다림의 쌉싸래한 인내도 좀 되찾아서 숙성으로 달콤하게 꽃피우길 빌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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