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란의 봄
/이화영
어린왕자가 그려진 하늘색 담요에서
아기가 몸을 말아 발가락을 빨고 있다
아기 기저귀를 개면서 도망을 생각했다
서랍을 정리하면서도 눈길은 트렁크를 더듬었다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
공포가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 때,
도망은 차가운 우유와 같아서
입술이 아닌 입속에 품어보는 말
보따리가 눈물의 대상으로 각인된 건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부터였다
엄마가 떠난 봄에
얼음 박힌 진눈깨비가 내렸다
눈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이
분홍 꽃잎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보따리를 삭제했는데 어린 시절은 죽지 않았다
신발을 잃은 바람의 목덜미에
옥양목 목도리를 감아주고 싶었다
-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현대시인선, 2015)에서
황사가 뒤덮은 봄날 같습니다. 매운 먼지가 눈앞을 가립니다. 이 맘 때면 일손을 놓고 먼산 바라보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시인은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부터였다’고 고백합니다. 이후 봄은 늘 어수선하고 어지럽습니다. 시인은 갑작스레 어른이 되었지만,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떠난 봄’을 앓고 있습니다. 죽지 않는 이 슬픔을 위무하려는 시인의 마음이 애틋합니다. 봄을 앓는 사람들의 서늘한 목덜미에 봄빛 목도리를 둘러주고 싶은 날입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