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감사도 날을 정해 뜻을 전한 게 언제부터였던가? 예전에는 절기에 따른 세시풍속이 있어 하늘에 감사를 많이 올렸다. 자연의 변화와 뗄 수 없는 농사가 일상 속의 기릴 날들을 만들어 감사하며 나누게 한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무슨 기념일을 정해 특별하게 기리고 즐기는 데 익숙해졌다.
감사에도 유효기간이나 적정온도가 있을까만, 오월은 특히 감사를 살펴야 할 날이 많다. 일삼아 짚어봤더니 다른 달보다 기념일도 훨씬 많이 잡혀 있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18민주화운동기념일, 발명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 거기에 석가탄신일까지 10일이나 되니 그야말로 무슨 날들의 행진이다. 이름 붙은 날 특히 챙겨야 할 가족과 주변까지 돌아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감사를 표해야 하겠다. 언뜻 번거롭고 피곤하고 지갑 걱정부터 나오는 게 바로 감사의 달에 담긴 고충이다. 삐지려는 신음을 참으며 달력을 보는 오월의 속사정들이 짚이는 까닭이다.
감사가 비싸다는 것은 그래서만은 아니다. “평화는 비싸다”는 말에 꽂혀 돌아보다 감사도 그렇다는 생각에 끄덕인 것이다. 평화 유지를 위해 세계 각국이 쏟아 붓는 비용이 어마어마한 것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주지의 사실이다. 어느 국가나 첨단 무기 개발이나 그것을 사고팔고 하는 무역 등 엄청난 평화 유지비를 지속적으로 들이며 안전을 도모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과 비용에 끝이 없듯, 관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에도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그런 점에서 감사도 어쩌면 평화 유지와 비슷한 방법이나 자세로 좀 비싸게 여겨야 할 것 같다.
감사가 비싸다니,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싼 선물부터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를 제대로 전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부터 선물의 종류와 금액 같은 세심한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물론 ‘김영란법’에 걸릴 뇌물은 제외한 가족 선물의 경우다). 머리를 모아야 하고 시간을 내어 자리를 함께하고 헤어지기까지 잘 마쳐야 서로에게 뜻 깊은 감사의 자리로 남는다. 진정한 감사라면 그 모든 과정과 시간과 노력이 즐겁고 행복하고 소중하다. 그와 달리 감사의 자리가 안 만나느니만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사정이나 불편한 얘기가 튀어나오고 그러다 울근불근 다투기도 하니 조마조마한 가족모임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감사도 관계의 유지를 위한 노력이 점점 더 비싸게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보면 감사가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오월 신록 아래 서면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는데, 이만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도 점점 비싼 대가가 따르니 말이다. 아까시향 간간 실어오는 광합성 초록바람이 살아있음의 광휘를 일깨워줄 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싶어 코를 벌름거린다. 변함없이 아낌없이 주는 기쁨을 받아들며 이 감사의 대상들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행복에 겨울 때 불행을 생각하며 대비하듯, 아직 덜 망가진 환경과의 관계도 더 회복하고 잘 살려야지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에도 유지를 위한 비용이 필요하다. 자연에 더 이상 감사할 상황이 아닌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폐허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는 명백해진다. 천재지변이야 자연의 활동이니 인간을 향한 경고로 받으면 되겠지만, 생태계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감사할 자연도 그만큼 적어지니 말이다. 자연에 대한 감사가 사라지면 생명의 평화도 사라지는 것. 평화가 비싼 만큼 감사도 비싸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다.
가족과 이웃과 지구의 생명들과 더불어 지켜가야 할 감사. 뭇 생명의 평화와 그에 대한 감사와 감사의 유지는 개인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살림을 위한 길이다. 그러니 귀한 삶터를 위해서도 감사를 비싸게 여기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있다. 감사란 귀한 마음의 예(禮)니 그 유지비가 좀 비싸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