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국회 개원을 위하여 여야의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의장과 부의장을 뽑고 상임위원장도 뽑아야 한다. 의원별 소속 상임위원회도 정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은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한다.”고만 하였고, 국회법은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된다.”고 하였다. 즉 제1당이 국회의장을 맡는지, 아니면 대통령 소속의 여당이 맡는지는 아무 규정이 없다. 부의장은 어느 당이 맡을지도 정해진 바 없다.
우리 국회는 제1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 1석을 맡고 제1야당이 부의장 1석을 맡는 ‘빛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과반수 정당이 없을 때에는 부의장 1석을 제2야당이 맡았다. 하지만 이는 관행에 불과하므로 여야 원내지도부가 개원 전에 협상으로 정한다. 그런데 상임위원장 배분문제와 연결지어 서로 영향력이 큰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확보하려고 하므로 쉽게 합의할 수 없고 무한 투쟁이 계속된다. 아무 법적 기준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로 법에 정해진 날짜에 원 구성을 할 수 없게 된다.
국회법에 없는 관행으로 파행 불가피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국회 임기 개시일로부터 7일째 되는 날 본회의에서 선출한다. 상임위원장은 첫 본회의 개최일을 기준으로 3일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서 개시일 기준으로 9일째 되는 날이 데드라인이다. 20대 국회 임기 개시일은 5월 30일인데 7일째 되는 날인 6월 5일은 일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현충일이므로 첫 본회의는 7일에 열린다. 따라서 원 구성 법정시한은 6월 9일이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국회는 정작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현행헌법 아래서 1988년 13대 국회부터 현 19대까지 원 구성 법정시한이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기간 7차례의 전반기 원 구성에 걸린 기간은 평균 52.3일이다. 현 19대 국회는 개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문제 등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여 임기 개시일 이후 33일 만인 2012년 7월 2일에야 개원하였다.
한편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은 임시의장선거의 예에 준하여 본회의에서 선거한다. 임시의장은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다수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이에 따르면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무기명투표로, 즉 자신의 뜻에 따라 국회의장과 부의장, 그리고 상임위원장을 뽑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원내지도부가 협상한 내용대로 투표해야만 한다. 의원의 자유의사는 말살된다. 이러니 지도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무리 참신한 초선의원들을 많이 당선시켜도 국회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법 따르거나 개정으로 기준 마련해야
우리 국회가 ‘지각 국회’의 오명을 벗으려면 법에 맞지 않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서로 양보를 통하여 합의가 될 때는 빛나는 관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법치국가와 민주주의를 해친다. 부의장을 야당에 양보하는 관행,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관행의 경우 차라리 미국처럼 다수당이 독식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책임정치에 부합한다. 아니면 법을 개정하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밖에도 ‘법보다 관행’ 사례는 많다. 예컨대 법제사법위원회 소관사항은 법무부, 법제처, 감사원, 헌법재판소, 법원과 군사법원의 사법행정사항, 탄핵소추 관련사항과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이다.
그런데 제1야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면서 여당의 법안통과를 막는 병목현상을 불러 왔다.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도 정치적 판단을 추구하여 상급위원회처럼 운영되어 왔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제1당의 자리를 내놓은 새누리당이 국회의장 직을 포기하면서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는 실리를 내심 반기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이라면 행정부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법제처가 모든 부처의 상급기관이란 말인가? 이런 논란과 갈등을 예상해서 기준을 미리 정하여 정쟁을 예방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법이다. 법대로만 된다면 지각국회도 없고, 누구 책임인지 모호한 상황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