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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 칼럼]내 마음의 보석상자 속에

 

지금 생각하면 ‘나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구나’ 하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나는 작은 상자 하나를 갖고 있었다. 크기가 교과서만 하고 깊이가 제법인, 뚜껑에 약간 녹이 쓴 양철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엔 일곱 살부터 모아온 나만의 보물들이 담겨 있었다. 보물이라야 줄 없고 고장 난 손목시계와 어디에 쓰인 것인지 모를 신주와 구리조각, 못 쓰게 된 삼촌 만년필, 딱지와 구슬 등등, 그 시절 눈높이에 맞는 잡동사니가 전부였다. 그러나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모른다. 혹여 갖다 버릴까 잊어버릴까, 다락 귀퉁이에 숨겼다 광 한구석에 감췄다, 이리저리 나만 아는 장소에 보관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꺼내보곤 했다. 요즘 어린이의 눈높이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딸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려 봐도 그렇고, 5살 외손자의 책상서랍을 봐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생각은 시간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토록 소중하던 보물 상자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안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친 후였으니 족히 10년은 됨직하다. 그러면서 이런 것도 느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넣어둘 상자가 마음속에 생겨서 그랬다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며 가끔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열어본 적이 있다. 속엔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모두 내가 넣어둔 것들이다. 빛바랜 꿈도 있었다. 사춘기의 풋풋한 설렘도 있었다. 슬픔 기쁨 섭섭함, 후회와 양심을 속인 부끄러움까지. 지나온 시간의 성적표 같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모두가 귀하고 소중한 보물들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의 간사한 마음도 작동했다. 마음의 상자 속에 쌓여 있는 것들 중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취하고 나머지는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아니 밀어버렸다기보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 모르겠다. 나머지도 타인에게 내세울 게 별로 없는 것들이었다. 나만이 귀중히 여기는 감성적인 것들뿐이었다.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보람이나 성취, 노력, 봉사, 남을 위한 심지어 가족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흔적마저 찾기가 힘들었다.

마치 바퀴 달린 마차가 비탈길을 쏜살같이 내달리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상자 속에 담아놓은 것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보물’ 보듯 ‘보석’ 다루듯 애지중지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살아온 세월만큼 비례해서 내세울 지혜와 지식도 없다. 따라서 후회하는 맘이 더욱 드는 게 요즘이다. 한편으로 위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후회란 보통 두 가지란 사실과 한 일에 대한 후회와 안 한 일에 대한 후회 중 적어도 한 가지엔 해당되지 않아서다. 또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상대적으로 짧고 경험이란 소중한 자원이 남아서 특히 그랬다.

나이 들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살아온 내 삶과 그런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이다. ‘지나온 삶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살아가는 나의 삶이 타인에게,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나’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따뜻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인가’ 이렇게 질문하는 또 다른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아닌가 싶다.

그곳엔 나와 함께하는 모든 것과 연동된 많은 내용이 존재해서다. 때문에 그 안에선 삶의 의미를 찾고 운용하기도 쉽다. 때론 의무감이 커지면서 내가 만든 삶의 의미와 가치가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져 기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내 마음의 보석상자 안에서 우러나는 행복감보다는 남에게 보이는 행복을 더 추구한 어리석음도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만든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산다는 것이다. 과거의 근심 걱정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오지 않을 것에 대해서 근심하는 것도 아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충실히 산다는 의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도 인생이 행복한 사람들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백금도, 순금도, 황금도 아닌 ‘지금’이 그것이라나. 언제나 뿌듯함을 전해주는 보석들이 가득 찬 ‘내 마음의 보석상자’. 이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 그 시작이 ‘지금’이라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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