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 밥을 놀다
/이덕규
상갓집 마당 끝 절구통 위에 올려놓은 사잣밥을
순식간에 배 속에 털어 넣은 상거지가 오랜만에 뜨듯해진 밥통을 흔들며
눈 덮인 논둑길로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다가
한순간 휙, 돌아서서 이쪽에 대고 커다란 주먹 감자를 날렸다네
그때, 킬킬대던 어른들 사이
창검 비껴 차고 팔뚝 같은 쇠사슬을 어깨에 둘러멘 저승 식객 하나가
그 꼴을 망연히 바라보다 돌아서서
이제 막 밥숟가락 내려놓은 사람 앞세우고
시장타, 서둘러 떠나며 중얼거렸다네
오죽하면 사잣밥을 목에 매달고 다니면서 밥 버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저승법보다 무서운 밥!
- 이덕규 시집 ‘밥그릇 경전’
이승에 내려온 저승 식객을 쫄딱 굶겨 보낸 거지가 있다. 상갓집 마당 끝 절구통 위에 올려놓은 사잣밥을 순식간에 배 속에 털어놓은 상거지가 있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이제 막 밥숟가락 놓은 고인의 집에서 사잣밥을 훔쳐 먹었겠는가. 이렇게 밥은 무섭다. 때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까지도 탈탈 비워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산사람은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그리하여 한순간 휙, 돌아서서 이쪽에 대고 커다란 주먹 감자를 날리는 저 거지를 저승사자도 어찌할 수 없으니, 오랜만에 뜨듯해진 밥통을 흔들며 눈 덮인 논둑길로 엎어지고 자빠지며 달아나는, 혹여 저러한 민망함이 있다 해도 온 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하니, 그 까닭에 우리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 해학적인 시를 결코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