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김병호
배드민턴공이 걸려 있다
아무도 주우러 오지 않는다
바람도 잃고 약속도 잃고
매일 아침 새처럼 울었겠다
노을이 지면 숨이 거칠어지고
구름의 자서전이나 들척이며
울음 오므리듯 잠이 들었겠다
무리를 이루지 못한
한낮의 백열등이나
막다른 골목이나
줄 끊어진 라켓이나
여름은 내게
어떤 그림자를 주었을까
여름 내내 가지에 걸려 있는 저것이
더디더라도 내 심장이면 좋겠다
오래 울다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은 저것이
마지막 내 발자국이면 좋겠다
- 유심 (2015년 11월)
어떤 기의(記意)는 기표(記標)로 인해 보다 포괄적 함축성을 갖는다. 화자는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배드민턴공에 자신을 투영한다. 얼핏 스치기 쉬운 광경이겠지만 시인의 눈으로 보면 그 공은 단순한 공이 아니다. 누군가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그리하여 설레는 약속장소에도 나가고 바람몰이도 하는 인격체로서의 공이다. 여름 내내 가지 위에서 새처럼 울었을 그 공처럼 고독한 물상들, 한낮이 무의미한 백열등이나 전진을 허락지 않는 막다른 골목이나 못 쓰게 돼버린 라켓처럼 고독의 종(種)들은 무궁무진하다. 고독을 질료로 사는 동종의 종족이라서 시인은 그 공의 심장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그저 발자국 같은 흔적이기만을 바라는 따스함이 잔잔한 페이소스를 띄고 묻어난다. 그 새, 아직도 구름이나 들척이며 울고 있을까? 그 거취가 자못 궁금하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