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끝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 논의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했었다. 당시에는 레임덕을 방지하고 퇴임 후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여론의 지적을 받았다. 또한 개헌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대통령중심제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도 나왔다. 5년 단임이라는 제왕적 대통령중심제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과연 내각제나 연정이라는 대안을 수용할 만큼 정치적 상황과 여건이 성숙해 있느냐가 문제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개헌논의에 또다시 불을 지핀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아보인다. 개헌의 필요성이 있었다면 차라리 임기 초에 개헌 관련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충분히 거친 후에 논의돼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개헌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국가운영의 틀을 새로 짜고,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기본법 등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기에 자칫 졸속으로 만들어질 우려가 있다. 또 이로 인한 국론의 분열과 정치권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하자마자 이번 국회에서 개헌이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이후 여야 국회의원들도 이원집정부제와 분권형 내각제 개헌 등 경쟁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회현상이나 의식이 달라져 법도 그에 맞게 고쳐져야 하는 게 옳은 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내용이나 민생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즉흥적으로 거론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각 당의 개헌 방향에 대한 주장이 맞서 잘못하면 국론이 분열되고 오히려 역사에 심판을 받게 된다면 곤란한 일이다. 국민적 합의나 구체적인 논의없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섣불리 거론한다는 것도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국회의 권력만을 더 늘리겠다는 의도로 비쳐질 수도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만 1만 건에 이른다. 민생 현안들을 야반도주하다시피 내팽개쳐 경제가 어려워지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법 노동개혁법 등 각종 민생 및 경제활성화 법안들도 표류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극복하는데 온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개헌 논의에 앞서 어떻게 하면 경제가 살아나고,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느냐가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