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 검은 눈이 성내어 뒤룩거리고 배는 불룩 내민 꼴 우습구나야. 책상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 술이 취해 얼굴이 빨개 가지고 비틀비틀 하는 꼴 우습구나야. 책상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 주정하다 아래로 떨어져서도 안 아픈 체 하는 꼴 우습구나야”
아직은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장난감이 흔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 오뚝이는 아주 훌륭한 교육적인 장난감이었음에 틀림없다. 요즘에는 생후 1년 남짓 갓난아이들 용품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물건이 되고 만 것은 그 오뚝이라는 장난감이 정말 재미없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어서 아무리 넘어뜨려도 발딱 일어나는 오뚝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은 재미있겠지만, 연속 서너 번 반복하게 되면 움직이는 것을 쫒는 고양이조차도 더 이상 오뚝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오뚝이는 노래를 하고 스스로 재주를 넘고 형태도 색깔도 다양하다. 하물며 다양한 수입품까지 있다. 그러나 위의 오뚝이 노래 가사는 어린이들이 부르기에는 몹시 불건전한 내용이다. 성을 내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주정하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꼴이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런 교육적인 검증 없이 어린이들에게 유행시켰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오뚝이처럼 술을 마시고 넘어져도 기필코 일어서고 말테야’를 가르치는 것 같다. 물론 이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생각하는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었을 터이지만 분명 적절한 가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오뚝이를 교육적으로 잘 풀어내셨다. 학생들에게 오뚝이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실 때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니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쓰러지고 넘어질지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나 정진해야만 성공하는 삶이라고 하셨다. 누구나 다 살다보면 넘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넘어진 경우에 누군들 다시 벌떡 일어서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일어서고 싶어도 더 이상 일어설 힘도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넘어진 채로 그냥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은 오뚝이처럼 아래가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오뚝이처럼 아래에 무게 중심을 만들을 수 있을까? 머리를 가볍게 비우고 단전호흡으로 심신을 단련하면 오뚝이처럼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참 어처구니없는 비유이다. 차라리 그것을 내공 혹은 저력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내공은 욕망과 의지를 토대로 이미 오뚝이 같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차라리 다 비워버린다면 다른 그 무엇이 빈자리에 들어와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재주로 비울 수 있단 말인가. 비워가는 과정을 종교에서는 영성훈련이라고도 한다. 오히려 약간의 스트레스가 삶에 의욕을 주고 생기를 준다는 보고서도 있다. 스트레스가 내면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뜻 같다. 그러나 그릇된 오뚝이의 욕망은 패가망신할 수 있다. 도박, 마약이 그러하다. 자칫 정치도 그럴 수 있다.
최근 홍모 최모 변호사들의 욕망은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어렵게 판검사가 된 사람들이 변호사가 된 후 지향하는 목표가 오직 돈뿐이라면 그들은 돈 벌기 위해 판검사는 스펙 쌓는 과정이었을 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정당한 수임료라면 그 누구도 비난할 사람 없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주면서 의뢰할 시민들은 아직 없겠지만 만약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이런 일을 했다면 전국 로스쿨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더 큰 비난이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다가 아슬아슬하게 실패하면 오뚝이가 될 확률이 높지만 이로 인해 자칫 자괴감, 우울증, 정신공황 등이 찾아오게 되면 심각해진다. 지난 달 정신병이 있는 청년이 화장실에서 처음 보는 아가씨를 살해했다. 강남역 일대가 추모열기와 시위로 사회에 호소를 했다. 생명의 소중함,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비하, 그리고 위험한 정신병자에게 시민들이 무방비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런 정신병자들의 속성은 오뚝이와 퍽 유사하여 다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홍·최 변호사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의구현이라는 욕망이 돈으로 타락하면서 돈이 그들의 배를 오뚝이 배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각자는 무엇에 관해서만 오뚝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