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개발을 미룬 논에 망초 꽃 지천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것이 흰 파도처럼 거대하다. 건들바람이 드나들고 날것들 숨어들기에 딱 좋은 곳이다. 벼가 심겨져 있어야 할 곳에 풀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하지 지나고 이맘쯤이면 감자를 캔 논에 늦은 모내기를 했다. 천수답이라 한 방울이 물이 아쉬워 아버지는 밤을 새워 물과의 전쟁을 했고 형제처럼 지냈던 이웃도 이때만큼은 양보도 미덕도 없었다.
물꼬싸움에 큰 소리가 오갔고 클 대로 큰 모를 심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시름을 놓곤 했다. 논두렁에는 콩을 심고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다. 어디든 곡식을 심을 수 있는 곳이면 무엇이든 심었다. 산짐승이 내려와 농작물을 헤치고 산그늘에 수확이 적어도 한줌 땅이라도 묵히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 비옥한 땅이 잡초로 뒤덮이고 망초 꽃이 물결을 이루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다. 개발에 묶이기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면 탐스럽게 익은 나락이 황금물결을 이루던 곳이었다. 물론 지주들은 몇 년분의 보상을 미리 받고 농사를 짓지 않기로 해서 물질적인 손해는 없다고 하지만 많은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해 본다면 참으로 졸속 행정이 아닐 수 없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농부가 저 땅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땅을 아는 사람들, 흙과 함께 한 생을 산 사람의 마음은 오죽 답답할까. 農者天下之大本也 했거늘 한두 해도 아니고 몇 해씩 저 많은 농토를 풀밭으로 묵히는 것이 화가 난다.
나도 여가삼아 몇 백 평 밭농사를 짓는다. 하루 이틀만 들에 나가보지 않으면 궁금해서 좀이 쑤신다. 애호박이나 오이가 겉늙는 것은 아닌가, 고추밭에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얼마나 많은 풀들이 밭을 점령했을까 해서 밭으로 가보곤 한다. 집과 밭의 거리가 좀 멀어서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지만 아침에 눈뜨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밭이다.
풀죽어 있다가도 물을 주거나 비가 오고나면 생기가 돌아 마디를 늘이고 열매를 매달고 익히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다. 매일 매일이 다르다. 자급자족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놈들 커가는 모습이 더 볼만하다.
지금이야 살기도 좋아졌고 먹을거리들이 풍요로워졌지만 우리 자랄 때만 해도 오월이나 유월쯤이면 식량이 부족했다. 장래 쌀을 얻고 남의 농사를 짓고 품앗이를 하면서 보릿고개를 넘기곤 했다. 저물녘들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덜 영근 보리를 방아에 찧어 보리밭을 지으면 푸르둥둥한 빛이 돌면서 풋내가 났다.
늦은 저녁을 마루에 둘러앉아 먹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손톱을 깎아 던진 듯한 초승달과 그 아래 북두칠성이 보이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각자 자기 띠와 태어난 달의 별자리의 이름과 뜻을 찾아보기도 하고 반딧불이 잡아 병에 담아놓고 어둠을 밝히기도 했다.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라디오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라디오를 수시로 때리곤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묵정밭을 바라다본다.
추억이 된 유년과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경지가 대립된다. 개발도 발전도 필요하지만 짜임새 있는 행정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 또한 땅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