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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재난행정의 달인, 오리 이원익에게 배우다

 

조선시대 명재상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몇 분 계시지만 그 중 오리 이원익을 들 수 있다.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당쟁의 거친 세파 속에서 무당파로서 소신과 공명정대로 조선시대 3대 국왕(선조, 광해군, 인조)을 모시고 40년 동안 여섯번의 영의정, 네 번의 도체찰사를 역임하는 등 65년간 공직생활을 하신 광명시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광명시 소하동에 이원익 재상을 모시는 영우정과 평소 생활하셨던 관감당과 종택을 비롯하여 충현박물관 등이 있다. 특히 오리서원에서 주관하는 ‘오리 이원익 청렴·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전국의 공공기관에서 선호하는 독창적인 청렴교육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광명소방서는 올해 5회에 걸쳐 전직원이 수강했는데 이를 통해 평소 청백리 재상으로만 알고 있던 이원익의 또 다른 면인 ‘현장중심의 재난행정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백리로서 이원익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초가집에 허름한 갓을 쓰고 한 뙈기 땅도 노비도 없이 쓸쓸히 지내니 이웃조차 아무도 재상인줄 알지 못했다’고 실록에 기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얼마나 철저했으면 열여덟 번이나 사퇴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재물에 욕심이 없던 그는 짚신을 직접 꼬아서 신고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돗자리를 짜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원익은 죽기 전 ‘절대 후하게 장사 지내지 말라’, ‘그릇된 재화를 멀리하고 농사에 힘써라’, ‘나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마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그에게는 언제나 부정과 뇌물이 접근할 수 없었다.

인조께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평생 그를 존경하는 까닭은 그의 공로와 덕행만이 아니다. 그의 청렴함을 모두가 본받는다면 무엇 때문에 백성의 근심이 있겠는가?”

수많은 유혹에 흔들림 없는 정직하고 검소한 생활로 능력과 청빈을 갖춘 명재상으로 역사가들은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 비상사태시 행정체계를 유지하면서 국가안위를 지키는 직책인 도체찰사(都體察使)를 네 번이나 역임하셨다. 오늘날의 대형재난 발생시 지방에 파견되어 사태를 신속하게 대응하고 수습하여 국민을 위로하고 보살펴주는 국가위기대응팀장 격이다.

그는 재임 중 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병자호란 등 국가 위기 시 정확한 판단과 현장중심의 행정으로 가는 곳마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해결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민심이 흩어지면 만사가 다 그릇 친다’며 지방행정이 어렵고 힘든 곳을 찾아 해결하는 ‘불난 곳’을 찾아 공정하게 직접 불을 꺼주는 백성중심의 재난행정 전문가이셨다.

국난이 극심했던 시기에 탁월한 재난현장의 실무능력과 일관된 청렴정신은 왕으로부터 만백성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오리 이원익은 원칙을 지키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공인으로 동료들에게 ‘바보’소리를 들으면서 근무했다고 한다.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을 바보라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세상이다.

청렴정신뿐만 아니라 백성중심의 현장행정 달인이었던 오리 이원익의 삶이 대한민국 모든 공직사회에 표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바보’ 공직자가 되어 시민안전의 버팀목으로서 더욱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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