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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민중미술을 바라보는 젊은 관객의 시선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보다 더한 사회적 참사를 겪어본 적이 없는 필자와 같은 젊은이에게는 크게 공감가는 문장이다. 좀 더 오래 살아와서 이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어온 이들은 어쩌면 매번 반복되고 마는 역사의 굴레를 더욱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호가 터진 그해, 충격과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이에 대해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반면 보다 즉각적이고 격렬한 표현들도 접할 수 있었다.

젊은 관객들에게 ‘세월호’는 분명 어떠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미술사에 민중미술이라는 영역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젊은 관객들의 눈에 포착이 되었다. 그전에는 미술학도들조차 그런 게 있었는지,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었다. 민중미술가들의 목소리는 격분에 차 있다. 그러한 거침없는 표현들을 그전에도 드문드문 접한 적이 있었지만, 그토록 거친 목소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목구멍에서 직접 터져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전에는 잘 실감하지 못했었다.

민중미술을 다룬 전시들이 올해 들어 눈에 많이 띤다. 전국 각지에서 민중미술 작가들의 회고전과 기획전들이 열리고 있는데, 그중 서울시립미술관의 ‘행복의 나라’전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몇 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작품을 모아 전시를 몇 차례 진행해왔는데, 전시를 보며 기획자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즉각 눈치챌 수 있었다. 고통에 찬 표현들은 험난했던 우리의 현대사와 그것을 아파하는 작가들의 심정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표현은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 거친 표현들이 아픈 가슴을 더 아프게 후비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 그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혐오주의가 만연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깔끔하고, 은유적이고, 감각적인 전시 방식에는 그리 큰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방식은 마음이 잘 와닿지 않고 게다가 잘 모르겠는 여느 전시와 다를 게 없다.

우리의 이데올로기가 영원한 승리의 깃발을 쥔 것처럼 여겨진 시절이 있었고, 누구는 여전히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쓰라린 좌절 속에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식이 조금씩 싹트고 있는 와중에 세월호라는 도화선이 터졌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낡았다고 덮어놓은 생각들과 개념들을 다시 꺼내보아야 할 때이다. 이념적인 논쟁들도 들추고, 역사도 들춰야 한다. 그것은 한때 꽤나 기세등등했지만 결국 전투에서 패하여 지금은 자취를 감춘 퇴역 군인을 우리의 삶 속에 다시 불러오는 일과 같다. 그런데 설움과 적대심으로 가득한, 빨갛게 충혈된 그 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민중미술 작품 속에는 한국의 아픈 현대사들이 담겨있다. 이 시점에서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의 서문은 광주민주항쟁과 세월호가 유비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광주민주항쟁이 레미제라블의 한 에피소드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을 다루는 전시기획이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개념들이나 현란한 감각들을 덧붙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차근차근 들려주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언젠가 격월간지 ‘에세이스트’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나약한 민초로서 몸소 겪은 이가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쓴 글을 읽었었다. 전쟁의 현실은 배워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예리한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가들이나 소설가들이 아닌 숱한 뭍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민중미술을 다루는 전시를 통해서도 진짜 육성과 진짜 사건들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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