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 김 매는 밭머리에서도, 벼를 베는 논두렁에서도 늘 고물라지오가 람루한 외모와 다르게 쾌청한 목소리로 세상이야기와 노래를 흘려놓군 했다. 그리고 그 고물라지오 바로 옆에 신문과 책들이 놓여져있었다.
‘농부작가’인 주덕진(74살)은 40년을 넘게 그렇게 고물라지오옆에서 펜을 잡았다. 작물을 심고 돌보는 농부인 그의 담담한 일상이 담긴 세상살이는 또 그렇게 담백한 문체로 이어졌다.
“시골 할배가 뭐 특별할게 있겠습니까. 40년 동안 틈틈이 글을 써왔지만 말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아직 류통기한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네”라고 표현할만큼 부끄러움도 많았던 ‘농부작가’ 주덕진씨를 만난건 여름해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7월 26일, 그동안 어렵게 저작권 신청을 했던 작품중 일부가 저작권등록이 비준되여 내려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은 뒤였다.
우리 작가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저작권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우리 문단에서는 저작권 신청이 그리 흔치 않은지라 더더욱 반가울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도작문제로 가슴앓이를 해왔던터라 작품등록증서를 손에 쥐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든다.
“시골서 농사일 하며 우울한 심사를 달랠겸 잠시 해본다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고 그는 돌이킨다.
“1980년대를 꿰뚫는 서사가 있는 작품을 쓰고싶었지요. 우리 시대 자화상을 써보려 했는데 나는 너무나 세상을 아는게 없는겁니다. 세상 모든 뜨거운 그걸 아우르고싶었는데 제 글들은 아직도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요.”
늘 겸손하게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작품들은 도시화되고 각박해지는 삶속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자연을 소재로 생명력이 넘치는 글들도 많다.
물론 시대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도 등장하지만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은 순박한 ‘농부작가’의 시선을 마주하면 세월을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좋은 술을 마시는 기분이다.
어쩜 현대사회에서 특히나 우리 지역의 작가들의 존재가치, 농촌문학의 쇠퇴를 지켜보는 아쉬움, 성실한 농부의 소중함… 이 모든것들이 그의 글속에 가득 채워져있는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는 ‘농부작가’인 그가 진솔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글에 담아내서인지 수백편의 작품들중 수상작품들도 수두룩하다. 그동안 발표작품은 280여편, ‘연변일보’, ‘길림신문’ 등 여러 매체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발표한 통신원고만 해도 1300여편이 된다.
그중 그가 작사한 노래 ‘사랑의 칠색가락’은 2008년 ‘우수매주일가’상을, 소품 ‘허수아비’는 2005년 전국소품콩클에서 우수작품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고 또 소품 ‘세탁기 풍파’는 1997년 길림성문예단체소품대회에서 3등상을 차지하는 등 수십차례의 영예를 받아안았고 지난 2008년에는 동화집 ‘가시 돋는 뽈’을 펴냈다.
“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글 농사도 짓는 사람이우. 그냥 읽히는대로 한 시골농부가 살아온 기나긴 휘파람 소리로 넘겨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의 말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언제나 필을 손에서 놓지 않는, 또 언제나 당당한 조선족작가이고싶은 로인 주덕진옹의 몸부림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글·사진=신연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