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
/서정춘
내 몸의 잎사귀
뒤 귀때기
빗소리 얻으러 귀동냥 가고 있다
귓속으로 귓속으로
귀동냥 가고 있다
2
비오는 날은
떠돌이
빗소리를 아느냐
빗소리 따라다닌
슬픈 귀동냥
3
세상은 빗소리로 가득하고
문득 나만 없다
- 서정춘 시집‘죽편’ / 동학사
혼자만의 숨결 속에서 빗소리에 나를 온전히 맡기면 나는 비 맞는 잎사귀가 된다. 귀때기는 빗소리를 따라다니는 떠돌이가 된다.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 세상천지에 빗소리 가득한데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비이며 잎사귀이며 빗소리를 따라 떠도는 쓸쓸함이다. 맑게 씻기는 나무처럼 투명해지는 내 몸의 잎사귀. 그 몸 잎사귀 뒤 귀때기도 빗소리 따라 슬픈 귀동냥 가는 것이다. 홀로 비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청량한 적막함. 지금 댓잎들 위에 솨솨 거리는 빗소리가 천지사방 가득 들리는 듯 하다. 내 마음 댓잎 위에 듣는 빗소리.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