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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야기]어느 노인의 황혼이혼

 

“제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공원벤치에 앉아 보는 것입니다.”

60대 중반의 여성이 이혼사건의 조정기일에 이혼을 원한다며 한 말이다. ‘성격차이’라는 이혼사유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불충분해 조정에 붙여진 사건이여서 가사조정위원들로부터 이혼소송의 취하를 권유받았으나, 그 여성이 이혼소송 취하를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위 사례에서 노년의 여성은 재산분할도 청구하지 않고, 위자료도 청구하지 않고 오직 이혼만을 청구했다. 그 여성은 “재산은 필요 없어요. 딸들이 준 용돈을 모아 방을 하나 얻고 혼자 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단 하루라도 사랑받고 살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웃고 있는 그 여성의 얼굴은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소녀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 여성의 남편은 이혼을 거부했지만, 결국 그 여성의 바람대로 이혼 조정이 성립했다.

법원행정처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황혼 이혼’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황혼이혼’의 비율은 2007년 20%를 넘어선 뒤 2010년 23.8%, 2012년 26.4%, 2014년 28.7%로 증가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2016사법연감’에 따르면 작년에 황혼 이혼한 부부가 3만2천626쌍으로 전체 이혼부부 가운데 29.9%를 차지했다. 황혼이혼 30%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재혼건수는 남자 2천672건, 여자 1천69건으로 각각 전년대비 8.3%, 18.5% 증가했다. 우리나라 전체 재혼건수가 4만6천388건으로 전년대비 2.4%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령자의 재혼만큼은 늘어난 것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는 경향 속에 ‘졸혼’과 ‘경조사 부부’라는 말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졸혼이란 결혼졸업의 줄임말로 법적인 혼인관계는 유지하나 서로의 개인 생활에는 간섭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도 문제삼지 않는 걸 말한다. ‘경조사 부부’는 황혼 이혼을 하고 서로 연락도 않고 지내다가 자녀의 경조사에서만 만나는 부부를 말한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1999년에 ‘이시형 할머니’의 황혼이혼 판결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67세의 나이에 제기한 이혼청구가 기각되자 3년 뒤 70세의 나이에 두 번째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에서 “남편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하였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항소를 했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폭력과 외도를 일삼은 80대 남편의 귀책사유를 인정해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100년을 따로 살아도 이혼할 이유가 없으면 안하는 거지, 왜 남의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야단이야. 이 바보 같은 것들…행복하게 살긴 뭘 행복하게 살아. 그저 늙은이가 밥 먹고 살면 되지. 특별한 게 뭐 있어?” 80대 남편이 이시형 할머니의 변호사에게 했다는 말이라고 전해지는데, 할머니의 남편과 앞서 언급한 가사조정 사건의 남편의 태도가 너무 흡사하다.

황혼이혼에 대한 법원의 재판실무도 많이 변했고, 분할연금제도가 도입되고 올해부터는 공무원과 선생님들도 이혼하면 퇴직연금을 나눠야 하는 등 법령과 제도 또한 황혼이혼 30%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정작 황혼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상대방 배우자는 1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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