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당론으로 정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추천 총리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탄핵이 현실화될 경우에 대비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만은 안된다는데는 컨센서스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으나 그 ‘대안’을 놓고는 좀처럼 일치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 추천 총리는 당초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야권이 꺼내든 카드이지만, ‘전제조건’을 둘러싼 해석차로 야권과 청와대간 의 핑퐁게임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야권은 대통령의 퇴진을 전제로 한 국회추천 총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퇴진을 전제로 한 총리 수용 불가 방침을 시사하고 있는 것. 특히 야권 대선주자들이 전날 총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야3당과 국회에 요청한 가운데 제2야당인 국민의당이 ‘선(先)총리 추천론’을 앞세우며 민주당을 연일 압박하는 등 야권 내에서도 전선이 어지럽게 헝크러져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총리 문제에 대한 복잡한 속내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탄핵 추진에 대해 비교적 일사불란하게 결론이 내려진 것과 달리 선총리 추천론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면서 혼선을 빚었다. 국회 추천 총리 문제와 관련,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청와대의 언급을 놓고도 해석이 분분했다.
결국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우상호 원내대표가 “총리 문제는 지도부에서 논의할 것이며, 기본원칙을 지켜가면서 진행해 가겠다”고 밝히면서 의총이 마무리됐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국회 브리핑에서 “국회 추천 총리 추진 여부는 그 실효성과 의미, 현실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빠른 시일내에 결정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기 원내대변인은 의사결정 시기에 대해 “대체로 금주 중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8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직접 받은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의 언급에 대해 항의 성명을 내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우 원내대표가 좀더 진의를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고 우 원내대표가 의원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일단 정 의장은 청와대로부터 “바뀐 것은 없다”는 입장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의총에서는 황 총리의 퇴진을 강제할 수 있는 ‘황교안 탄핵’ 카드까지 거론됐다.
송영길 의원은 “청와대가 대통령의 하야를 전제로 한 국회 추천 총리를 받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총리를 탄핵해야 한다”며 “황 총리야말로 부역세력의 핵심이다.2014년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 사건 당시 법무장관으로서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과 공동으로 사건을 은폐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국무총리 탄핵은 대통령 탄핵보다 요건(발의는 재적 3분의 1이상, 의결은 재적 과반수 찬성)이 낮아 야권의 힘만으로 가능하지만 탄핵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놓고는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총리 문제를 마냥 방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국회부의장 출신의 이석현 의원은 “총리 추천 문제가 시급하다”며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우리가 추천한 총리를 추천하기로 약속했다. 국민이 안심하고 퇴진운동을 하도록 총리를 추천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반면 전현희 의원은 “사정 변경으로 국회 추천 총리를 청와대가 안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추천하는 총리를 받으라고 할 정국이 아니다”라며 ‘선(先) 탄핵, 후(後) 총리 선출’을 주장했고, 금태섭 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탄핵안이 의결되면 황교안이 아니라 황교안 할아버지가 와도 무슨 힘을 쓰나”라며 즉각적 총리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스탠스는 자칫 전선이 총리 인선 문제로 이동, 촛불의 동력을 꺼트릴 수 있다는 인식과 책임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수권정당의 면모 사이에 처한 갈등과도 무관치 않다.
/임춘원기자 l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