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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칼럼]촛불의 후문

 

촛불은 시적이다. 나직하니 덜 밝아서 더 몽상적이고 사색적이다. 고요히 자신을 태우니 겸허하고 헌신적이다. 오로지 침묵의 헌신으로 경건함을 깨우는 흰 죽비 같다. 촛불 자체는 약하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그토록 높고 깊고 강하다. ‘촛불의 미학’(가스통 바슐라르)으로 집약되는 몽상의 자유와 고독도 있다. 보다 내밀한 공간에서의 사유나 기도와 함께하는 게 촛불의 권역이었던 것이다.

그런 촛불이 광장으로 나오며 성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뜨거운 분노를 분노로 옮겨 붙이며 도저하게 타오르고 있다. 바람 앞에 먼저 엎드리거나 고독한 사람의 몽상과 기도에 동참하던 촛불이 불길을 달고 일어선 것이다. 세간에 회자되는 “촛불이 횃불 되고 들불 된다”는 말은 그렇게 점화 유발자의 상황과 인식과 태도에 따라 점점 높이 타오른다. 촛불을 낮춰 보는 자 앞에서는 반대급부로 인화력이 커지며 더 걷잡을 수 없는 함성의 춤을 춘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는 촛불은 그렇게 유례없이 위대한 진화를 펼쳐나갔다. 전국 곳곳에서 올린 촛불도 다르지 않아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불러내서 거리마다 여는 시민의 심판대에 세우곤 했다.

이번 촛불 행진 속의 불꽃은 하나같이 선하고 평화로운 꽃들이었다. 얼마나 평화로운 행진이었으면 매번 늘어난 참여자가 2백만 명을 넘어도 ‘연행 0명’으로 계속하며 ‘명예혁명’으로 추앙받을까만. 실제로 시민들은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고 격려했다. 준비해온 도시락이며 요깃거리며 ‘그만두유’ 등을 나눠먹으며 추위를 이겨냈다. 자신이 찍은 죄를 백만분의 일이라도 사죄하려고 나왔다는 육십쯤의 근육질 남자도 마음은 같았다. 함성은 크고 높고 거셌지만 그 속에 뜻을 담아 전하는 촛불의 마음들은 한결같이 선하고 밝았다.

부패를 알 리 없는 갓난아기의 동참도 있었다. 젊은 아빠는 길을 트고 엄마는 뒤를 미는 행진의 한가운데서 유모차의 아기는 아무 걱정 없다는 듯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 새로운 앞을 여는 중이니 아기는 좋은 세상 만날 거라고들 같이 웃었다. 그런 세상을 위해 좌우의 촛불들이 주말마다 나와 목이 터져라 외치고 함께 걸으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서로 끄덕였다. 세 살짜리가 뜻도 모를 “탄핵하라”는 외침 앞에서도 그랬다. 남녀가 없고 노소가 없는 뜨거운 행진을 보면 눈물이 절로 났는데 주변 시민들도 간간이 눈시울을 훔쳤다. 그럴수록 ‘아몰랑’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나 홀로’ 푸른 기이한 ‘관저’를 뒤엎을 듯 인왕산을 뒤흔들었다.

고요한 사색 혹은 기도의 촛불이 거대한 함성의 불길로 번져가는 과정은 갈수록 놀라웠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촛불 본연의 소임 같은 헌신의 일깨움인가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낳는 동력인가. 함께하는 외침의 가능성인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불을 붙여주는 인화에 따른 폭발력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촛불은 서로서로 불을 붙여주며 키워가는 힘이 아주 크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는 망언에 대한 저항으로 등장한 LED 촛불은 편하지만 옆 사람에게 붙여주는 맛은 없다. 아무튼 하나하나의 촛불이 꽃으로 피어나며 이루는 광장은 장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꽃밭이다.

매 집회마다 스스로 써온 역사를 경신하는 촛불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온갖 풍자와 기발한 패러디도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며 시위의 난장을 새로 쓰고 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예술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시민들도 매주 새로운 예술적 표현으로 또 다른 축제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주말을 반납하면서 국민적 자괴감을 분노와 함성으로 일으켜 세우는 손들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하지만 탄핵과 처벌이 촛불의 명령대로 되지 않으면 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 하루 빨리 촛불의 명을 받들어 결행해야 시민도 촛불도 본연의 권역으로 돌아갈 수 있다. 호젓한 촛불 아래 몽상의 시학 같은 사색의 자유를 다시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모쪼록 아름다운 촛불의 후문도 아름답게 당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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