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국회가 승리감에 도취해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함성이 들렸고, 국민들 역시 환호했다. 언론들도 일제히 평화적인 촛불시위가 일궈낸 성숙한 시민들의 위대한 승리였다고 보도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마저 찬성에 62명이나 힘을 보태 친박계의 상당 수도 동참했다. 곧바로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엄중한 민심의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국민과 내각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아직 대통령의 드러난 혐의는 없지만 청문회나 언론보도 과정을 보면 최순실 등 특정 개인들의 국정농단 의혹이 어느 정도 밝혀진 상황이어서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은 야당이 요구하는 즉각 퇴진보다는 특검수사와 앞으로 남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등 헌법적 절차를 차분히 따르기로 했다.
지난 주말 열린 제7차 촛불집회도 계속 이어졌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축제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장 축배를 들 분위기는 아니다. 야당이 정국을 주도하게 됐다고 좋아할 일은 더욱 아니다. 아직도 더불어민주당은 탄핵가결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국민의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추이를 보면서 경제부총리 임명 등 수습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어 야당 간 다툼이 상존해있다. 요동쳤던 탄핵정국이 탄핵가결로 끝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더욱이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결정이 남아있기에 더욱 그렇다. 탄핵소추안의 상당 부분이 아직도 의혹 수준인데다 ‘세월호 7시간’까지 포함돼 있어 탄핵사유에 대한 정당성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문회 과정에서도 증인들은 하나같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고 증언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범’이라는 검찰의 공소내용도 어디까지 법원이나 헌재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관련한 분쟁에 대해 결정을 내려주거나, 대통령이나 장관 등이 큰 잘못을 저질러 국회에서 파면을 요구할 때, 그것을 심판하는 일도 하는 사법적 헌법보장기관이다. 그래서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9명을 추천하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는 균형을 맞춘다. 국민의 여론과 헌법에 근거한 사법적 판단은 별개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활동을 시작한 특검의 수사과정에서도 탄핵소추안과 상반된 사실이 혹시라도 드러난다면 국회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그동안 행적을 미뤄볼 때 어느 정도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법의 판단에 앞서 그 결과를 누구도 예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입법기관이라 해도 국회는 헌법 위에 있지는 않다.
지금도 차기 대선을 미리 치르자고 하면서 정권획득에만 골몰하고 정계개편도 논의된다.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마당에 탄핵에만 도취된다면 국회도 개혁의 대상이다. 국민들의 승리니, 국민의 뜻을 받들었다니 하면서 언제나 국민을 앞세우지만 국민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만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국민을 위해 얼마나 일을 했는지 반성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입이 아프도록 민생을 외치면서 뒤로는 자신들의 앞날과 이익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다. 이제라도 국회의원들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이제 국회의원들이 협치를 통해 국정을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그들도 탄핵대상일 뿐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탄핵제도는 없지만 스스로 이를 만들 수 있는 용기는 없는가. 혼란스런 나라에 국회가 또 싸움만 한다면 촛불민심의 다음 집회장소는 국회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