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천양희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
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
강물이 언제 바쁘다고 거슬러 오르겠습니까
벼들이 언제 익었다고 고개 숙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해 지는 줄 모르고 팽이를 돌리고 있습니다
햇살이 아이들 어깨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진장 좋은 날입니다
-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 / 창비시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어머니가 부를 때까지 놀던 때가 있었다. 작은 꽃이 제가 더 크겠다고 먼저 피워낸들 그도 역시 작은 꽃이다. 허공이 곧 길인 새도 길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다. 강물이 역류하면 범람이요, 벼 모가지가 뻣뻣하면 쭉정이일 테니, 세상이 이와 같다면 괴로울 일도 다툴 일도 쓸쓸할 일도 없겠다. 아이들 어깨에 햇살은 아직 머물러 있으며, 얼굴 발개지도록 해지는 줄 모르고 팽이를 돌리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달나라의 장난>(‘정말 속임없는 눈으로/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이 생각난다. 순간순간들이 구김 하나 없다. 참으로 아름다운 무진장 좋은 날인 것이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