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김신용
비의
바늘을 닦는다. 녹슬지 않게……
암울한 구름 덮힌 이 공치는 날
빗물 스미는 방에 속절없이 갇혀
세상 무너지는 빗소리에 흐르고 있다 보면
구름장 더욱 낮게 고여오는 가슴속
비의
바늘, 못이 되어 박혀와도
입김 호호 불어 아픈 마음으로 닦는다.
삶의 터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저 빗물이
갈증으로 갈라 해진 흙의 입술에
풀잎의
마음 한 술로 적셔지고, 아무도 몰래
땡볕에 몸 비틀던 뿌리에 젖어
꽃 한 송이 떠올려 주는 저 비의
바늘,
보이지 않는다고 잊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게……
- 김신용시집 ‘버려진 사람들’ /고려원·1988
14살부터 구두닦이 부랑생활 지게꾼 등을 전전하며 아프게 살아온 시인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비를 바늘이라 했을까. 게다가 몇 푼 되지 않는 벌이마저 공치는 날엔 바늘이 못이 되어 박혀 온다. 주로 서울역을 근거지로 연명하던 시인에게 그래도 진흙탕으로 만드는 빗물이나마 마른 입술 적시며 꽃 한 송이 떠올려 주는 고마운 바늘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빌딩 그늘 아래 이름 없이 살아가는 지금의 아픈 우리들에게도 시인의 마음은 몇 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바늘로 찔러온다. 삶은 아픔은 언제나 그치지 않는 것일까. 아직도 유효한 시인의 바람 ‘보이지 않는다고 잊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게’ 서로 보듬고 살 일이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