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나희덕
양쪽 무릎 뒤 연한 주름살 속에
내 귀가 달렸으면
그래서 귀뚜라미가 날개를 부벼서 내는
저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면
귀뚜라미를 들을 수 있었으면
꽃들을 맴돌며 절박하게 잉잉거리는
저 벌떼의 기도를 들을 수 있었으면
주문도 기도도 끌어올릴 수 없는 내 마음에
그 소리라도 들어왔으면
노래도 사랑도 낙과처럼 저문 가을날
과수원에 떨어진 사과 한 알을 들고
산누에나방처럼
두껍고 단단한 고치를 틀고 앉아
한 사흘만 지낼 수 있었으면
그 사흘의 어둠을
인간계의 삼십 년과 바꿀 수 있었으면
배 고프면 잘 익은 쪽부터 사과를 베어 먹고
그렇게 사흘만 인간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으면
내 귀가 내 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살면서 가끔씩 ‘내가 내가 아니기를’, ‘지금 여기가 아닌 그 너머를’ 열망하거나 꿈꿀 때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거나, 삶이 비루하고 절망스럽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아니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러한 갈증이 더욱 심한 존재들이다. ‘한 사흘만’이라도 귀뚜라미와 몸 바꿀 수 있기를, 벌떼의 기도를 들을 수 있기를, 산누에나방처럼 견고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기를, 인간의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가 섬세하고도 간절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깨끗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로워하고 절망한다는 것 자체가 꿈꾸는 일이니만큼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희덕 시인 아닌가.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