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의 1800년 작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한때 이웃집이나 동네 미용실에 걸려있는 달력에서 자주 보곤 했던 그림이라고 한다. 알프스 산등성이 위에서 힘차게 발돋움 하고 있는 말 위에서 나폴레옹은 카리스마 넘치고 기세등등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사람들은 그림 속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이처럼 영리하고 통치력 있는 지도자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지금의 궁핍함과 어려움을 한방에 날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피의 혈투와 계층 간의 반목이 끊이지 않았던 정국에 일시적으로나마 질서를 가져다 준 인물이었다. 전장으로부터 들리는 승전보는 오랜 내전으로 인해 지치고 불안해진 민심에 자부심과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상공업을 진흥시켰고, 그동안 만성적자를 면치 못했던 재정은 건전해졌다. 전쟁을 통해 얻어온 배상금 역시 재정을 뒷받침했으며, 재정이 안정되자 통화 역시 안정되었다. 프랑스 전역에는 운하, 항만, 도로, 관개시설이 지어졌고, 전에 없던 사회적 안정과 번영으로 인해 인구는 증가했다.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그린 다비드는 나폴레옹 집권 시기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나폴레옹은 초상화와 역사화가 자신의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고, 다비드는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화풍 구사와 주제 선정에 탁월한 예술가였다.
나폴레옹의 초상은 각 통치시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송혜영의 ‘나폴레옹(1769-1821)의 선전 초상화’라는 글에는 각 시기별로 나폴레옹의 초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비교·분석해 놓았다.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 장군 시절의 용맹함을 표현한 그림이었다면 1812년 ‘집무실의 나폴레옹’은 황제시절의 안정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다. 1804년 나폴레옹은 자신의 지위를 통령에서 황제로 고친다. 왕정을 부정해왔던 그였지만 왕보다 더 높은 지위이자 신의 승인을 받은 자라는 뜻의 ‘황제’라는 지위를 새롭게 만들어 그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무렵 다비드뿐 만 아니라 다양한 화가들이 나폴레옹의 초상화 제작에 동원되었는데, 1806년 앵그르가 나폴레옹의 통치의 절정을 담은 ‘옥좌 위의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은 화려한 도포를 입고 월계관을 쓰고 있으며 자신의 키보다 더 큰 검을 한 손으로 들고 있다.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더 이상 자유의 전사가 아니다. 그 옛날 루이 14세의 초상화에서 접했던 것과 같은 절대 군주의 자태이다.
나폴레옹의 독단은 프랑스에 일시적 안정과 강력한 정부를 안겨 주었지만, 곧 그의 독단은 자기모순에 빠져 버렸다. 혁명의 가치를 수호한다면서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고, 언론탄압과 권위적인 문화를 부활시켰다. 가장 큰 실책은 영국을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배제시키고자 했던 대륙봉쇄설이었다. 대륙봉쇄설이 시행되자 영국의 공산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그의 통치 하의 국가들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한때 유럽 대륙에서 자유의 수호자로 환영받던 나폴레옹은 곧 자국의 독립을 위해 제거해야 될 대상으로 여겨진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수없는 혁명이 발발했으며, 그중에서는 실패한 혁명도, 성공한 혁명도 있다. 시민들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통치자들은 너무나 쉽게 그러한 시민들의 의사를 묵살하곤 했다. 그 오랜 지리멸렬한 시기의 한 부분에는 나폴레옹이 시민들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주었던 때도 있었다. 그 사이 역사가 조금은 진보하고 있었다고 보아도 좋다면, 그 진보는 지리멸렬한 피의 혈투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독재자가 안겨준 속 시원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들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곤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급급한 마음에 시대의 지리멸렬함이 주는 값진 교훈에 대해서 늘 간과하고 있지는 않나. 나폴레옹 통치의 가치가 옳던 그르던 간에 그는 유럽 전체에 강한 인상을 남겨 때로는 추앙의 대상으로, 때로는 숙청의 대상으로 반복되어 표상된다. 1871년 파리 코뮌 때에는 방돔 광장에 세워졌던 나폴레옹 동상이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부서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