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골목을 건너갔다
/마경덕
움푹 파인 발자국이 골목을 걸어간다. 막 포장을 끝낸 질척한 골목을 오래전에 지나간, 발을 잃어버린 발자국. 딱딱한 콘크리트 발자국이 쉬지 않고 골목을 걸어간다. 구두가 운동화를 껴안고 큰 발이 작은 발을 업고 박성희 미용실, 월풀 빨래방, 현대 슈퍼를 돌아 나간다. 사라진 발을 기억하는 발자국들. 빈 발자국을 따라갔다. 어느 날, 찾아온 사랑은 나를 딛고 가버렸 다. 버거운 영혼이 가벼운 영혼을 밟고 저벅저벅 앞만 보고 걸어가 버렸다.
누군가 길에 마음을 빠뜨리고 한참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 골목은 발자국 흉터를 가지고 있다.
발자국은 발의 자국이다. 누군가 걸어간 기억의 흔적이다. ‘누군가 골목을 건너’간 발자국은 정적이지만 동적이다. 발자국은 또 다른 발자국을 껴안거나 업고 ‘쉬지 않고 골목을 걸어간다’는 점에서 삶의 풍경을 거느린다. 그래서 발자국은 과거이지만 현재다. ‘사라진 발을 기억하는 발자국들’이기 때문이다. 이 시 속의 발자국이 그렇다. ‘어느 날, 찾아온 사랑은 나를 딛고 가버렸다’. 그러나 발은 떠나갔어도 발자국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찍혀 있다. 낙인처럼 찍혀서 여전히 사라진 발을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사라진 발을 기억하는 발자국은 아프다. 그 발자국을 들여다보는 독자의 마음도 아프다.
/김선태 시인·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