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시간
/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 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 피재현 시집 ‘우는 시간’ / 2016·애지
새해가 되면서 사람들이 새해에는 웃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서로 인사를 한다. 그런데 시인은 지금은 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마치 민방공훈련 하듯이 일제히 시간을 정해 울어볼 수 있는 한 십 분의 시간. 사람들이 울지 않음으로써 생긴 질병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온통 응급실이 되었고, 전쟁터가 되었고, 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울음대신 웃음으로 질병을 키우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정해진 이치에 슬퍼할 줄 아는, 정해진 사랑에 아파할 줄 아는, 그래서 누구라도 부끄럽지 않게 울 수 있는 자유의 시간으로서 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웃는 듯 울어 온 시인의 위로가 묻은 손수건 같은 시편이다. 우리는 더러 이런 눈물의 손수건 같은 시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