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옥
/고영
끈꽃주걱* 화려한 꽃잎 위에
부전나비가 앉아 있다
끈끈이주걱 흔들리는 만큼
부전나비 흔들린다
부전나비 날갯짓만큼
끈끈이주걱 흔들린다
어쩌다 너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꽃의 지옥이라도 좋다!
끈끈이주걱 아가리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기꺼이 날개 접는다
*식충식물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
극한의 경험은 개별적 정서를 낳는다. 시인은 끈끈이주걱에 앉아 있는 부전나비를 통해 자신의 심상을 투영하고자 한다. 누가 사랑을 환희라 하는가. 특히나 에로스적 사랑의 뒤끝은 서로에의 탐닉만큼 쓰다. 그래도 그 달콤한 독을 향해 장렬히 투신하는 것이 생명의 원초적 본질이라면 지옥이라도 좋은 것! 서로가 서로에게 꽂혀서 흔들리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든 지경을 시인은 얼마나 처절하게 겪어냈을까. 테드 휴즈의 ‘까마귀의 첫수업’이란 시가 떠오른다. 신은 숭고한 사랑을 가르치려 하지만 까마귀로 상징된 인간의 내부에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튀어나와 반항을 시도한다. 결국 하느님은 애욕에 바다에 빠져 드잡이하는 두 남녀를 ‘떼어놓으려 애쓰다가, 욕하다가 울음을 떠뜨렸다’는. 태초에 빛이 아니라 사랑이 있었나보다. 하느님도 울게 하는 사랑이란 이름의 저 무지막지한 테러여, 꽃의 허울을 쓴 허방이여. 당신은 끈끈이주걱인가, 기꺼운 부전나비인가.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