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보들레르
아, 나의 고통아, 떠들지 마라 그리고 좀 더 조용히 해라
네가 저녁을 원했다 : 저녁이 내린다. 자 황혼이다
어스름 저녁연기가 거리를 감싼다.
어떤 사람에겐 안식을, 어떤 사람에겐 근심을 가져다주며.
인간의 천한 무리들이 쾌락이라는
사정없는 사형 집행인의 채찍 아래
노예의 잔치로 후회를 거두러 가는 동안
나의 고통아, 손을 내게 다오 이리로 가까이 오라.
저들을 멀리하고 보라, 저 하늘의 난간 밖으로
해바랜 옷을 입은, 고인(故人)된 세월들이 몸을 굽히는 모습을
웃음 띠운 회한이 깊은 물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빈사(瀕死)의 석양이 다리의 아치 아래 잠드는 것을
그리고 동쪽에서 긴 수의(壽衣)가 옷자락을 끌며 오듯
들어라, 정다운 고통아, 걸어오는 다사로운 밤의 발소리를.
- 프랑스시선집 / 을유문화사·1985
피에르 루이스(Pierre Lou's)가 ‘보들레르의 가장 아름다운 소네트’라고 했고, 폴 발레리는 이 시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마술적이라고 감탄했다. 술과 도박, 마약 그리고 방탕한 성생활로 몸이 심하게 망가져 가고 있던 때 쓴 시이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과거의 중압(重壓), 가난, 병, 그 위에 무서운 절대의 고독감,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개도 고양이도 없이 우뚝 혼자입니다. 누구에게 호소해야 좋을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시인의 처절한 고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이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