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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황정숙



허공에다 빗줄기를 흩뿌리듯 국수를 삶는 정오

식구들이 젓가락 짝을 맞추며 식탁 아래서 눈알만 굴리고 있다.

너무 오래 돌고 돌아서 아침과 저녁은 닳고 닳아

사각사각 뽕잎 갉는 소리만 고요한 정오

허기를 무쇠솥에 넣고 휘휘 젓고 있는 정오

할머니가 국수를 젓가락에 둘둘 말고 있다

필사적으로 씹히려고 잇몸으로 들어가는 긴 선들

휘어지고 구겨지고 엉키기만 하는 선들

비가 사각사각 제 소리를 뜯어먹고 있다

오물오물 실처럼 풀려나오는 그 시절을

이 없는 입으로 뚝뚝 끊고 후루룩거리는 정오

불어터진 면발이 퉁퉁 뱃구레만 불리고 있는 정오

식구들이 눈알을 멈추고 실꾸러미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끈적끈적한 정오가 막 지나고 있다.


 

국수로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시절이 잦았다. 엄마가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썰기까지 곁을 지키고 있다가 끝에 남는 꽁다리 달래서 장작불에 구워 먹던 시절이 아련하다. 식구들은 많고 먹을 것은 적었던 시절 무쇠솥에서 국수가 삶아지고 둥그런 밥상에 둘러 앉아 먹는 국수는 별 반찬 없이 신 김치만 놓고도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한 끼 식량으로서 충분했다. 이 시에서 언급하듯 아침과 저녁이 닳고 닳아 정오에나 먹을 수 있었던 국수 인 만큼 그 허기짐이 짐작이 간다. 비가 흩뿌리듯 국수를 삶고 필사적으로 씹히려고 잇몸으로 들어가는 선들 휘어지고 구겨지고 엉키기만 했던 시절 지금처럼 먹을 것이 흔해서 오히려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하는 요즘이지만 그 시절엔 허기진 배고픔을 해결하는 소중한 식량이었다. /정운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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